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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4

우리나라 무당은 언제부터 존재했나요?

무속인들인 무당은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존재했나요?

무당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존재해있었는지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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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아주 오래되었으며 단군때부터 정치적 우두머리이고 동시에 종교적으로 우두머리라고 할 때 그 종교가 바로 무속입니다.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23.08.14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확한 기록은 잘모르겠어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단군 할아버지가 정치적 우두머리이고 동시에 종교적으로 우두머리라고 할 때

    그 종교가 바로 무속신앙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걸로 추정되네요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우리나라에 무당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조선 시대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조선은 무속을 국가의 종교로 삼았으며, 무당은 왕과 귀족의 신탁을 받고 제사를 지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무속이 더욱 발전하여, 무당은 왕과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무당은 병을 고치고, 재물을 얻게 해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무속이 크게 위축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무당이 활동했습니다. 무당은 주로 민간신앙과 관련된 일을 했으며, 병을 고치고, 재물을 얻게 해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당은 역사는 고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무속에서 중요시하는 제의용 도구인

    청동 방울이나 청동 거울 등이

    청동기시대 유물로 나오는 것을 통해

    그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당의 시조(始祖)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지리산(智異山)의 성모천왕(聖母天王)이라는 성모전설, 고대 중국의 제녀(帝女)나 왕녀였다는 왕녀전설, 옛날 어느 귀족의 여성이라는 귀녀전설, 무녀가 왕명을 받들어 무사(巫事)를 시작했다는 왕무전설 등이다.


    무는 무당과 박수로 나뉘고, 무당은 무당의 정통인 숙련된 큰무당[大巫] 또는 단골무당과 미숙한 선무당으로 나뉜다. 단순히 무당이라 하면 여무(女巫), 특히 가무(歌舞)로써 강신(降神)하는 무녀를 뜻하나, 일반적으로 남무·여무 구별없이 쓴다.


    한국에서 무당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김대문(金大門)이 말한 차차웅이나 자충이라 함은 우리말로 무당을 말하며 사람들은 무당을 통하여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올린다(次次雄 或云慈充 金大門云 方言謂也 世人以巫事鬼神尙祭祀)”라는 대목이며, 이로 보아 신라 초기부터 무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도 BC 1년(유리왕 19)에는 왕의 질병에, 고구려의 차대왕(次大王)·산상왕(山上王) 때에는 점복적인 예언에 각각 무당이 관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때도 의자왕이 무당을 불러 점을 친 사실이 있으며, 고려에 와서는 기우제·사은제(謝恩祭)·서낭제 및 질병구제를 위한 행사에 무당이 참가하였다.

    조선 초에는 궁중 여인들이 별기은(別祈恩)이라 하여 국내 명산에 무녀를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고, 관에서는 표면상으로는 무속을 금지하면서도 기우제·기양제(祈禳祭)에 무녀를 불러들여 제사를 집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무당에 대한 인식은 민간신앙으로까지 깊이 뿌리내렸는데, 오늘날도 기우·기자(祈子)·안택·대감놀이 등 기복무속과 질병퇴치기도·제액기도 등 재난을 쫓는 무속으로 남아 있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