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잠이나
잠이나

국력을 낭피하면서 타지마할을 지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에 샤 자한의 타지마할 건설로 나라가 휘청이고 대신들도 반대했지만 22년간 건설을 밀어붙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타지마할의 건설 배경은 애처가인 황제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인 듯합니다.

    아내를 잊지 못하는 황제 때문에 수많은 백성이 노역에 참여했으며 엄청난 세금이 들어갔습니다.

    타지마할의 건설을 주도한 샤 자한은 17세기 초 재위한 무굴 제국의 5대 황제로, 당시 제국의 국력은 악바르 대제와 자한기르의 치세를 거치며 가히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선대들에 비해 샤 자한은 정복보다 예술을 애호하는 문화 군주로서의 측면이 강했고 또한 종교적으로도 대단히 관용적이었습니다. 그의 치세 중에 제국은 번영과 안정을 누렸고, 반란은 속속 진압되었으며 시민들은 평화를 영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지막지한 애처가이기도 했던 샤 자한은 그가 털끝만큼의 오점도 없다고 형용한 황후 뭄타즈 마할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리자,

    큰 비통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실의를 장엄하기 짝이 없는 묘역을 조성함으로써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곧장 제국 전역에서 막대한 세금과 인력을 징발해 당시까지 쌓아올려진 인도 건축 예술의 포텐셜을 한데 집중하도록 지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타지마할의 건축 배경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타지마할의 건설을 주도한 샤 자한은 17세기 초 재위한 무굴 제국의 5대 황제로 당시 제국의 국력은 악바르 대제와 자한기르의 치세를 거치며 가히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선대들에 비해 샤 자한은 정복보다 예술을 애호하는 문화 군주로서의 측면이 강했고 종교적으로도 관용적이었습니다.

    애처가 였던 샤 자한은 황후 뭄타즈 마할이 일찍이 세상을 떠나자 비통에 잠기고, 그로 인한 실의를 장엄하기 짝이 없는 묘역을 조성함으로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총애하였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하여 1632년에 무덤 건축을 명하여

    2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를 동원하여

    건설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 인도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사랑하는 부인 아르주망 바누 베굼, 속칭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이 아이를 낳다가 죽자 부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타지마할을 건립하였다. 무굴 제국 및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건축 기술자를 초청하고 2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동원하여 22년간 공사를 벌인 끝에 1648년 완공하였다. 궁전 형식의 묘지로 구성되었으며, 궁전을 꾸민 보석들은 터키와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해외에서 수입되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건축학적으로는 인도와 페르시아, 터키, 이슬람 문명권의 건축 양식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어 신비롭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샤 자한은 10년 후 막내아들의 쿠데타로 폐위되어 탑에 유폐되었으며, 죽은 후 뭄타즈 마할과 함께 타지마할 지하에 안장되었다.


    한편, 타지마할은 1983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등재 당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2007년 스위스 소재의 '신 7대 불가사의 재단(New7Wonders)'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타지마할을 콜로세움, 만리장성 등과 함께 선정하기도 했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