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정조가 아버지의 무덤을 격상시키며 현재의 수원으로 천묘하고 화성이 지어지는 상황 보기 위한 왕래한 방법인 배다리 설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곧 장헌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격상시키며 현재의 수원으로 천묘하고 수원 화성이 지어지는 상황을 보기 위한 왕래 방법으로 배다리를 자주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배다리 설치하는 관청도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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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배다리를 설치할 때에는 한강에 떠다니던 관용 선박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선박이 부족할 때에는 물건을 싣고 다니던 상업용 선박이나 개인 선박도 동원되었다. 주교사라는 관청을 두어 배다리를 만드는 일을 지휘하도록 했다. 배다리 양쪽 끝과 가운데에는 홍살문을 두어 최대한 격식을 차렸으며, 큰 배를 가운데에 배치하고 나루터 쪽으로는 작은 배를 두어 배다리의 중앙 부분은 높고 양쪽 끝부분은 낮은 모양으로 설치했다.
-출처:지역문화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