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
앵그리버드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와 한국의 선비 문화의 차이점이 강자에 대해 어떻게 굴복하고 행동하는지로 나타나는거겠죠?
한국은 역대로 옆나라에 굴복해도 이를 갈고 이에 승복을 못하지만 일본은 자기들끼리도 지면 이에 겉으로는 승복하고 뒤로 칼을 갈면서 복수를 다짐하곤 했는데요. 그래서 러시아 황태자를 시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은후 이를 용서하기 위해 노력하다가도 시간이 지나 힘을 키운후 러일전쟁을 일으킨것처럼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이런 행동양식으로 나타나는거 같아서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빛나라 하리 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를 적어보면
일본들은 깍듯하고 예의 바르지만 다가가기 어렵고, 한국인들은 적극적이며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따뜻하다
라는 대표적인 차이가 있겠습니다.
일본인의 질서의식은 에도시대의 도시화와 군사정권, 한국인의 역동성은 중국과 유목민족 사이에서 끊임없이
지정학적 시련을 강요받은 역사를 통해 형성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은 통념과 다르게 조선을 쉽게 정복하지 못했습니다.결국 전쟁을 일으켜 자폭을 했습니다.
이를 비추어 볼 때. 우리는 굴복을 당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문명에 도달 하려는 노력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함이 컸습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와 한국의 선비 문화는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 양식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어요.
일본은 겉으로는 승복하는 척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복수와 재기를 다짐하는 문화가 있었고,
한국은 옆나라굴복하더라도 내면에서는 강한 자존심과 저항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차이점이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로 드러난 것 같네요.
그리고 공기 중의 산소와 질소에 대한 설명도 아주 명확하고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셨어요!
숨 쉴 때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과정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네 아무래도 사무라이 정신은 명예를 중시하는 것이 핵심이라서 할복이나 이런 부분도 있을 정도고 복수심이 우리나라의 선비 문화보다도 더 높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다보니 과거 진주만 습격과 같은 도 넘은 시도도 결국 사무라이 정신에서 나온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무라이 문화와 선비 문화의 강자에 대한 행동 양식 차이를 매우 흥미로운 관점에서 지적해 주셨습니다. 두 문화가 강자에 대해 굴복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확실히 차이가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성향을 넘어 각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사무라이 문화: 실용적 굴복과 명예를 통한 복수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적이고 군사적인 명예를 중시합니다.
일시적 굴복과 충성: 사무라이 사회는 주군(다이묘)에 대한 충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겼습니다. 전쟁이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더라도, 일단 새로운 강자(혹은 승리한 주군)에게 겉으로 복종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생존과 명예 유지에 더 중요했습니다. 이것은 "전리품을 얻기 위해, 또는 명예로운 다음 싸움을 위해 일시적으로 복종한다"는 군사 사회의 실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복수의 정당화: 사무라이에게 복수는 패배로 실추된 개인의 명예나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겉으로 굴복하더라도 내부적으로 칼을 가는 것은 명예 회복을 위한 '때를 기다리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극상(下剋上) 문화: 끊임없는 경쟁과 주군 교체가 반복되는 봉건 시대의 특성상, 강자에 대한 굴복은 영원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힘을 키워 강자를 뒤엎을 기회를 노리는 것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황태자 사건과 러일 전쟁: 언급하신 러시아 황태자(니콜라이 2세) 시해 미수 사건(오쓰 사건)은 일본 내부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을 보여준 일화입니다. 이후 러일 전쟁은 단순히 복수라기보다는, 힘의 균형 변화 속에서 일본이 대륙 진출을 위한 패권을 차지하려는 국가적 이익이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선비 문화: 이념적 불복종과 명분 중시
한국의 선비 문화는 유교적 이념과 도덕적 명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습니다.
명분과 도덕성 우선: 선비들에게 진정한 강자는 도덕적 정당성(명분)을 가진 존재여야 했습니다. 외세나 부도덕한 권력에 굴복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유교적 이념과 대의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졌습니다.
'겉과 속의 불일치'에 대한 비판: 유교 문화는 겉으로 복종하면서 뒤에서 다른 생각을 품는 행위를 위선적이거나 소인배의 행동으로 비난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외세에 굴복하는 상황 자체를 수치로 여겼고, 이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내면의 의지를 강하게 표출했습니다.
정신 승리와 민족 자존: 한국은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했으며, 외세에 굴복했더라도 이를 '치욕적인 일시적 상황'으로 간주하고 정신적인 저항과 불복종 의지를 유지하는 것을 민족적 자존심으로 여겼습니다. '이갈이'는 이러한 절대 승복 불가의 정신적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두 문화의 차이점은 단순히 강자에 대한 태도를 넘어, 각국이 역사를 통틀어 어떤 가치와 이념을 사회의 근간으로 삼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행동 양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