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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731부대는 어떻게 되었나요?

마루타로 유명했던 일본의 731부대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어떻게 되었나요?

미군정이 관련자들은 처벌 받았나요? 아니면 흐지부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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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1부대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에 있던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이다. 1936년에서 1945년 여름까지 전쟁포로 및 기타 구속된 사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실험과 약물실험 등을 자행했다.


    1936년 만주 침공시 하얼빈 남쪽 20km 지점에 설립한 세균전 비밀연구소로 출발하였으며. 당시 방역급수부대로 위장하였다가 1941년 만주 731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설립 당시의 사령관은 1930년대 초 유럽 시찰을 통해 세균전의 효용을 깨닫고 이에 대비한 전략을 적극 주창한 사람은 세균학 박사 이시이 시로[石井] 중장(中將)이다. 부대 예하에는 바이러스·곤충·동상·페스트·콜레라 등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연구반이 있었고, 각각의 연구반마다 마루타라고 불리는 인간을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했다.


    1940년 이후 해마다 600명의 마루타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되어 최소한 3,000여 명의 한국인·중국인·러시아인·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살아남은 150여 명의 마루타들까지 모두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7년 미 육군 조사관이 도쿄[東京]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936년부터 1943년까지 부대에서 만든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출혈열 101개 등 수백 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및 생체해부실험 등과 동상 연구를 위한 생체냉동실험, 생체원심분리실험 및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 총기관통실험, 가스실험 등이었다.

    1940년 10월 27일에는 난징[南京]의 1644 세균전 부대와 함께 중국 닝보[寧波]에 페스트균을 대량 살포하여 100명 이상을 사망하게 하였고, 1941년 봄에 후난성[湖南省]의 한 지역에 페스트 벼룩을 공중 살포하여 중국인 400여 명을 희생시켰다. 특히 이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일본군도 경험 부족으로 자체 1개 사단의 병력이 감염당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