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성황후가 입궁할 무렵 15세의 남편 고종은 이미 후궁 귀인 이씨를 총애하고 있었습니다. 첫 날 고종은 왕비의 처소엔 들지 않고 귀인 이씨의 처소에 들었습니다. 그러다 1868년 4월 이씨가 완화군을 낳자, 흥선대원군은 또 고종의 첫 아들인 완화군 선과 그를 낳은 귀인 이씨를 총애하였습니다. 명성황후는 안전과 권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민승호 등 일가 친척,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실각시킨 풍양 조씨의 조영하, 안동 김씨의 김병기, 고종의 형인 흥인군 이재면 서원 철폐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유림의 거두 최익현 등과 제휴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리를 다지던 명성황후는 차츰 고종의 총애를 받아 1871년엔 아이를 낳았으나, 왕자는 항문 폐색으로 인해 5일 만에 죽어버렸습니다. 왕자의 죽음을 두고 민씨는 흥선대원군이 왕자에게 달여준 약에 산삼을 많이 넣은 일을 의심하였으며, 이로 인해 두 사람 간의 관계도 악화 되었다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