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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후루티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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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에게 오물을 맞은 정치인들이 사카린 밀수를 자행한 이유는?

제가 1966년도 당시 국회 의원 김두한에게 똥물을 맞은

정치인들이 사키린 밀수를 자행한 근본적인 이유들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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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6년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정부 정치자금과 관련해 건설자재로 가장하여 사카린을 대량 밀수입한 사건입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는 미쯔이 물산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하여 울산에 요소비료공장 건설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이병철의 아들 이맹희의 회고에 의하면, 공장건설은 정권과의 합의사항이었습니다. 즉 1967년 대선준비에 대한 강박관념과 농촌인구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비료공장 건설은 훌륭한 홍보용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 조건을 수락하는 대신에 이병철은 국민, 정부, 언론이 비료공장 건설을 지원할 것, 정부가 책임지고 10억 원의 은행 융자를 해줄 것, 공장건설에 필요한 인허가 등을 신속히 해줄 것, 공장건설과 관련하여 한 푼의 정치자금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한·일 양국의 대재벌이 밀수를 간여했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는데, 1966년 9월 22일에는 김두한 의원이 국회에서 똥오줌을 던진 ‘국회오물투척사건’이 발생했고, 10월 5일에는 『사상계』 장준하 사장은 민중당 대구 유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밀수두목’으로 규탄했습니다. 이 사건과 발언의 책임을 물어 김두한, 장준하는 각각 9월 24일, 10월 26일에 구속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문제는 정부가 밀수행위를 묵인, 방조, 지원했다는 의혹에 있었다. 정치자금을 매개로 권력상층부와 특정 기업이 거래했다는 것입니다. 사건 당시 미쯔이 한국담당자인 니시지마 상무는 후에 “상대측이 건설자재로 요구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