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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아시아의 등불이라고한 타고르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조선은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하면서 한국을 많이 칭찬한 수인 타고르는 어느 나라 사람이길래 우리를 그렇게 칭찬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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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에서 태어났으며 작가로

    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출생은 1981. 05. 07

    사망은 1941. 08. 07이라고 합니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이유로 타고르는 생전에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1861년 5월 7일, 인도 벵골 주 캘커타의 저명한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19세기 초에 영국 동인도회사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부친 데벤드라나트 타고르는 힌두교의 개혁에 관심을 두어 ‘마하르시’(위대한 성자)라는 호칭을 얻은 인물이었다.

    출처 : 인물세계사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타고르는 인도 출신 저명한 시인이자 철학자입니다. 그는 한국의 문화적 및 예술적 성취에 대한 찬사의 이유로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61년 5월 7일 인도 벵골주 캘커타의 저명한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의 조부는 19세기 초 영국 동인도 회사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부친 데벤드라나트 타고르는 힌두교의 개혁에 관심을 두어 마하르시라는 호칭을 얻은 인물입니다.

    영국의 명문 대학이자 간디가 졸업한 런던 대학교 그룹 소속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법을 전공했으나 중퇴, 벵골 문예 부흥의 중심이었던 집안 분위기 탓에 8살때부터 벵골어로 시를 썼고, 16세에 첫 시집 들꽃을 냈습니다.

    초기 작품은 유미적이었으나 갈수록 현실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졌고, 교육 및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습니다.

    시집 기탄잘리로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이는 아시아인 최초 노벨상 수상입니다.

    타고르는 한국을 소재로 한 시 동방의 등불을 남겼는데 동방의 등불은 1929년 타고르가 일본에 들렀을 때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겨 그 대신 동아일보 기자에게 전해준 시 입니다.

    이러한 시로 인해 한국을 우대하는 인물로 국내에 알려졌지만 사실 일본의 문화에 매료된 자포네스크적 기질의 인물로 일본은 시심을 자아내는 나라, 일본은 아시아에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이 해뜨는 나라에 감사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하며 5차례 일본을 방문, 러일전쟁에 일본을 숭상하는 시를 써 기고, 군국주의를 밀어주던 일본 우익의 거물 도야마 미쓰루와 친분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의 강연에서 이 나라는 물질적으로 진보했지만 정신적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하거나, 일본이 인도에도 야심을 품고 있는 듯 하다. 굶주린 그들은 지금 조선을 잠식하고 중국을 물어뜯고 있다 라고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기도 했고, 일본은 정신면에서 많이 낙후되었다고 비판해 극우 일본인들에게 미움을 사기도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타고르는

    인도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남긴 시 중에 나오는 부분 입니다.

    " 동방의 작은 새 목청 높여 명예로운 개선을 노래 한다 " 라는 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마치 우리를 위해서 쓴 시라고 주요한 선생이 번역을 한 것 인데요. 사실 이 문구는 우리를 위해서 동양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가 쓴 것이 아니라 사실 일본이나 인도 그 자신을 위해서 쓴 시인데 거기에 그냥 Korea 라는 이름만 바꾼것이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 했을 당시 1929년 3울28일 동아 일보에서 한국 방문을 요청 했지만 타고르의 일정 떄문 에 거절 했고 그 대신에 이 짧은 영어 시를 하나 받은 것이고 그것을 동아 일보에서 기사화 했던 것 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타고르는 근대 인도 최대의 문학자. 서벵골주 콜카타 출신. 아버지 데벤드라나이트 타고르는 인도의 근대종교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종교가이며 형제ㆍ친척 중에도 뛰어난 예술가ㆍ사상가가 많다. 혜택받은 환경 중에서 인도 고전을 공부하고, 영국 유학 등을 통해서 서구 낭만파문학에 친숙해졌다. 젊었을 때부터 반킴챤드라 등에게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고르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타고르는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우는 사람으로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칭송한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