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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영앙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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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는 언제 어디서 만들어진건가요?

집에 상평통보 동전을 발견해서 한자 글자가 상평통보라고 적혀있더라구요 이런 상평통보 화폐는 언제 어디서 만들어지고 사용이 됫는지 알수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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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숙종4년(1678년)이 상평통보의 최초 주조년도로 되어 있지만, 숙종 이전의 상평통보가 주기적으로 발견 되기때문에 (조선왕조실록에 인조 11년(1633년) 10월 호조에서 주전을 건의하여 왕의 허락을 얻어 주전을 개시하였다고 하는 문헌이 있어서) 최근에는 숙종 이전에 인조때 상편통보가 제조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평통보는 인조 대인 1633년 최초로 시험 주조되고, 숙종 대인 1678년 1월 23일 부터 유통되기 시작한 조선의 화폐입니다. '조선통보', 십전통보'와 함께 개항 이전 조선의 국가 공인 화폐로, 전근대 한반도에서 전국적으로 통용되었던 화폐 가운데 지속적으로 통화로서 기능했던 유일한 화폐였습니다.

      '상평'은 '상시평준'의 준말로 유통 가치에 항상 등가를 유지하려는, 즉 물가 안정을 꾀하는 의도와 노력을 반영한 표현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동전(銅錢)으로 기록되어 있고 민간에서는 엽전이라 불렀는데, 이는 동전을 세는 단위가 ‘닢’(동전 한 닢, 두 닢 하는 식. 나무에 달린 그 잎의 고어)이었기 때문이다. 혹은 상평통보를 주물로 제조하는 과정에서 상평통보들이 마치 가지에 달린 잎처럼 생겨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다.

      출처: 나무위키 상평통보


    • 조선 숙종 때부터 말기까지 사용함 금속 화폐. 흔히 동전 또는 엽전이라고도 한다.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으로, 가운데에 땅을 상징하는 정사각형의 구멍을 뚫고 상.하.좌.우에 한자씩 '상평통보'라 새겼으며, 뒷 면에는 주조한 관청을 표시했다.

      17세기에 들어와 시회.경제의 발전이 급진전하면서, 상업을 활성화하고 국가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화폐를 유통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1968년에 영의정 허적, 좌의정 권대운 등의 건의로 상평통보를 만들었다.

      1633년(인조 11) 김신국(金藎國)·김육(金堉) 등의 건의에 따라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유통을 시도했는데 결과가 나빠 유통을 중지하였다. 그후 1678년(숙종 4) 정월에 다시 영의정 허적(許積), 좌의정 권대운(權大運) 등의 주장에 따라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하여 서울과 서북 일부에 유통하게 하였다. 그 뒤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유통하게 했는데, 조선 말기에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통용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명목화폐의 통용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경제적 요청에 부응하는 한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거의 파탄에 이른 국가경제 재건책의 일환으로 동전을 법화로 유통·보급시키기 위해 화폐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그리하여 1678년에 상평통보를 국가의 유일한 법화로 주조하여 유통한 이후 화폐유통 영역은 점차 국내 각 지방으로 확대되고, 각 계층의 화폐가치인식은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ㅕ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평통보는 숙종 때 허적의 건의에 따라 발행됩니다.

      법정 화폐로 여러 기관에서 발행합니다.

      호조, 상평청, 훈련도감 등 기관과 지방 감영에서도 주조되어 사용됩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숙종4년(1678년)이 상평통보의 최초 주조 연대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인조 11년 (1633년) 상평청에서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상평청을 설치하고 주조 하였고 관청에서 주조하여 주조한 관청이르이 뒷면에 있다고 하는 답변을 구하였습니다.

    • 인조 11년(1633년) 김신국와 김육 들의 건의에 따라 상평청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유통을 시도하였으나, 상태가 나빠서 유통을 중시하였습니다.

      숙종 4년 1678년 1월에 다시 영의정 허적 등의 주장에 따라

      다시 주조하여 서울과 서북 일부에 유통하였습니다.

      그 뒤 점차 확대하여 조선 말기에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통용되었습니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주조하였으며,

      모양은 둥근 엽전으로 가운데 정사각형의 구멍을 뚫고,

      앞면에서 구멍 둘레에 상하좌우에 ‘상평통보(常平通寶)’라는 한자를 한 자씩 찍었으며,

      뒷면에는 주조한 청의 이름을 박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678년(숙종 4) 조선의 유일한 합법적 주화로 채택·유통되기 시작하여 조선 후기까지 사용된 명목화폐이다. 17세기로 들어 사회적·경제적 발전이 급진전됨에 따라 쌀·포 등 과 금·은 등 이 가졌던 화폐로서의 기능이 점차 한계를 드러내어 명목화폐인 동전유통의 필요성이 커졌다. 또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파탄에 직면한 국가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동전 주조, 유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사용 초기에는 다양한 관청 및 군영이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주조·유통하게 하였으나 점차 기반이 확립되자 국가가 화폐주조 관리체계의 일원화를 시도하여 1785년(정조 9) 마침내 호조가 업무를 전부 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순조에 들어서면서부터 관리의 일원화 원칙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여 다양한 관청에서 주조·발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에 의한 도급제로 전환되는 민영화 경향이 나타났다.

      1860년대에 화폐가치가 낮은 당백전을 남발함으로써 상평통보 유통체제는 큰 혼란을 겪는다. 결국 1894년(고종 31)에 주조발행사업이 중단되고,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평통보는 조선시대에 주조된 화폐로 조선의 화폐 단위는 문이었다. 1633년 김신국, 김육 등의 주청으로 상평청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처음 유통하였으나, 중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