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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침팬지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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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적보니 귀양을 많이보내던데 귀양가면 현대 감옥처럼 먹을거하고 다주는지 궁금해요

역사 서적보니 유명한사람들 귀양을 많이보내던데

현대감옥처럼 먹을것같은 식품을 정기적으로 보내줬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는분 계시면 답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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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Slow but steady
      Slow but steady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유배를 간 죄인들은 보통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 중의 하나 입니다.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귀양간 곳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 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것 입니다. 보통 식사도 본인이 텃밭을 가꾸어 곡식을 해 먹는 경우가 대부분 이지 누가 음식을 공급해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에는 귀양을 간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식품을 보내주었습니다. 귀양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형벌 중 하나였으며, 귀양을 간 사람들은 죄의 경중에 따라 유배지와 유배 기간이 결정되었습니다.

      귀양지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식품은 유배자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이 보내주거나, 유배지의 관청에서 공급해주었습니다. 유배자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은 귀양지까지 식품을 보내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귀양지에서 공급되는 식품은 유배자의 신분과 죄의 경중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배지의 관청에서 공급되는 식품은 쌀, 보리, 채소, 고기, 생선, 장류, 젓갈, 김치, 과일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습니다. 또한, 유배자가 원하는 특정 식품을 요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공급되는 식품은 항상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귀양자들은 직접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식량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배지에서 사는 사람들로부터 음식을 얻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사람들 중에는 귀양을 간 사람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성리학자 정약용은 나주, 강진, 제주도로 귀양을 갔으며, 실학자 이익은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갔습니다. 이들은 귀양지에서 많은 저술 활동을 하며, 조선의 학문과 문화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현대 감옥과는 달리, 조선시대의 귀양지는 매우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귀양자들은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식량도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귀양자들은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배지에 도착 후 주막이나 정해진 집과 주변 지역 외에 관리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고, 국가는 유배된 자들을 위한 지원을 전혀 하지 않아 유배당한 죄인의 생활비는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없으면 유배지에서 본인이 벌어서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당상관 정도 되면 이를 대비하기 위해 상단을 휘하에 두는 경우도 있었고 평소 그 상인들을 휘하에 두고 비호해주다가 삭탈관직 당하고 유배를 가게 되면 같이 데려가 그들이 벌어다 바친 돈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가끔 가족들이 물건을 보내는 경우는 있었으나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었고, 역적으로 몰리는 경우 엄중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제대로 지원하기도 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