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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파리매77
활달한파리매7723.04.04

우리나라 역사상 통금제가 있던 시기에 대해 궁금합니다

옛날 드라마나 뉴스에 보면 12시 기점으로 통금이 있어서 경찰들이 단속하고 하던데 이런 통금이 시행된 기간은 언제이며, 어떠한 이유로 진행 됬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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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4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광복 후의 야간통행금지제도는 미군이 진주한 직후인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되었으며, 미 제24군 사령관의 ‘일반명령’에 의하여 경성·인천 두 지역에 밤 8시부터 아침 5시까지의 통행금지령을 발포한 것이 처음입니다.

    이 제도의 전면 해제 건의안이 국회 내무위원회에서 가결된 것은 1981년 12월 10일이었고, 다음해인 1982년 1월 5일 국무회의에서 경기·강원 두 도 안의 휴전선 접적지역(接敵地域)과 해안선을 낀 면부(面部)들을 제외한 전국 일원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1988년 1월 1일에는 제외되었던 나머지 지역도 통금이 해제되었습니다.

    야간통행금지제도는 일상적으로 사회 공공질서 유지 및 질서 확립의 책임을 담당하는 역할로 작용했으나 근본적으로 사상 통제, 국가안보 수호, 정치적 저항세력 억압을 위해 국민들의 시·공간을 제한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야간통행금지제도 시행 아래 일반 시민들은 일상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일제의 감시와 처벌 방식은 야간통행금지제도의 처벌과 감시양식으로 이어져 식민지 국가폭력은 해방 후에도 사회 전반에 지속되었고, 이후 계엄법과 국가보안법으로 분화·적용되는 주요한 동력을 제공해 왔습니다.

    통행금지제도라는 강제된 국가적 시간규율은 한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빨리 빨리 문화, 택시 합승, 새치기, 속도전, 조급증, 속전속결주의 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야간통행금지 [夜間通行禁止]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복 후의 야간통행금지제도는 미군이 진주한 직후인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되었으며, 미 제24군 사령관의 ‘일반명령’에 의하여 경성·인천 두 지역에 밤 8시부터 아침 5시까지의 통행금지령을 발포한 것이 처음이다.

    이어 9월 29일에는 일반명령을 개정한 야간통행금지령을 발포하여 ‘미국 육군이 점령한 조선지역 내 인민’에게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통행금지가 포고되었다. 이 군정법령이 대한민국 건국 후에도 계승되어 치안 상황에 따라 시작 시간이 밤 11시로 단축되기도 하고, 또는 경우에 따라서 밤 8시부터나 10시부터로 연장되면서 지켜져 왔다.

    통행금지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전국으로 확대되어 계속되다가, 1954년 4월 1일 「경범죄처벌법」에 “전시·천재지변 기타 사회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때 내무부장관이 정하는 야간통행 제한에 위반한 자”라고 규정되어 야간통행금지 위반자가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게 되면서부터 법령에 의해 제도화되었다.

    1983년 12월 30일자로 이 법이 전면 개정되었을 때에도 ‘야간통행 제한 위반’이라 하여 그대로 존속되었다. 이 제도가 뚜렷한 근거 법령 없이 존속되어온 것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항상 준전시상태에 있다는 국민 간의 암묵의 양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한국민족 문화 대 백과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근대사회 여러 나라에서 대부분 실시되었던 제도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도 실시된 적이 있다. 전근대사회의 야간통행금지제도는 치안상의 필요가 주된 이유였다.


    전등이 발명·보급되기 전 등불 밑에서의 생산활동은 물론 구매·위락 등 일체의 활동이 제약받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사실상 도시주민들의 밤 시간은 휴식 내지 잠자는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광복 후의 야간통행금지제도는 미군이 진주한 직후인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되었으며, 미 제24군 사령관의 ‘일반명령’에 의하여 경성·인천 두 지역에 밤 8시부터 아침 5시까지의 통행금지령을 발퐇하였다.

    1981년 12월 10일 다음해인 1982년 1월 5일 국무회의에서 경기·강원 두 도 안의 휴전선 접적지역(接敵地域)과 해안선을 낀 면부(面部)들을 제외한 전국 일원의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1988년 1월 1일에는 제외되었던 나머지 지역도 통금이 해제되었다.

    자세한것은 구글링 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야간 통행금지는 1945년9월7일부터 1982년1월5일까지 실시되었습니다. 1945년 9월 7일부터 더글러스 맥아더의 포고령에 의해 실시되고 1982년 1월 5일에 해제되었고 처음에는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20시부터 5시까지 야간통행금지를 시작했다가 나중에 22시부터 4시로 단축되었다고합니다. 그러다 6.25 전쟁 직후부터는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며 1961년부터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 1982년까지의 통상적 통금 시간은 0시부터 4시까지였다고합니다.

    다만 1960년 4.19 혁명, 1979년 부산·마산 민주 항쟁 당시와 박정희의 사망으로 인한 계엄령이 발동될 때는 밤 22시부터 4시까지 통금시간을 2시간 늘린 적도 있었다고합니다

    통금을 실시한 이유는 치안상의 필요가 주된 이유였다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1970년대에는 통금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통금 시간에 밖에 있다 집에 못들어가서 모텔이나 민박 같은곳에서 자기도 하고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기간은 1945년 9월 7일부터 더글러스

    맥아더의 포고령에 의해 실시되고

    1982년 1월 5일 전두환 정부 시기 3S정책의 일환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이 영향으로 당시 사람들이 1시에 길거리에 나와 만세를 불렀을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에 신정 연휴까지 겹치면서 실질적으로 마지막 통금은

    1981년 12월 31일까지였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야간 통행금지는 1981년 12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금해제안'이 통과된 후,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 후유증도 있었지만 기대 이상의 경제적 효과도 있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가는 0시부터 전년도 12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통금해제안’에 따라 36년 4개월 동안 시행되었던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됩니다. 미군정청이 공포한 ‘미군정 포고 1호’에 따라 1945년 9월 8일부터 시행되었던 이 제도는 36년 4개월 만에 역할을 다하고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통쟁 금지의 목적은 처음에는 국가 보호 차원 이였다고 하나 나중에 군사 정권의 권력 유지 도구로 전락 하지만 결국 서울 올림픽 개최등 국제 적인 행사결정등의 이유로 마침내 전 시대적인 유물인 통행 금지가 사라지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2년 1월 5일 폐지될 때까지 36년 4개월 동안 시행된 '야간 통행금지제도'는 매일 밤 자정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사람들의 통행을 전면 금지하는 것입니다. 통금제는 1945년 9월 8일 「미군정 포고령 1호」에 따라 치안 및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시작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이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6·25 전쟁으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함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용되었습니다.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현금 인출을 제한하고, 대형 결제를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제 안정화를 추진하였습니다.

    기간은 1945년 9월 7일부터 더 글러스 맥아더의 포고령에 의해 실시되고 1982년 1월 5일 전두환 정부 시기 3s 정책의 일환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이 영향으로 당시 사람들이 1시에 길거리에 나와 만세를 불렀을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에 신정 연휴까지 겹치면서 실질적으로 마지막 통금은 1981년 12월 31일까지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통금제는 20세기 초부터 1940년대까지 시행되었습니다. 이 기간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긴 시간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통금제는 일반적으로 밤 12시부터 오전 4시까지 시행되었으며, 이 시간대에는 일반인들이 외출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는 밤에는 범죄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찰들은 이 시간대에 단속을 강화하여 밤에는 조용하게 지낼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식민지 방어 차원에서 통금제가 강화되었습니다. 일제는 국민들의 야간 외출을 금지하고, 명시되지 않은 모임과 출입도 금지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고, 국민들의 독립운동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광복 이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통금제가 계속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통금제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은 폐지되어 우리나라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야간통행금지는 1945년 9월 8일 날 시행 되어서 1982년 1월 5일 날 폐지 되었습니다.

    야간통행금지는 말 그대로 밤 시간에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한 제도입니다. 야간통행금지는 전근대사회 여러 나라에서 대부분 실시되었던 제도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도 실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전근대 사회의 야간통행금지는 국가안보와 치안상의 필요가 주된 이유 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한 미군군정청 하지사령관의 군정포고 1호로 서울과 인천지역에서 야간통행금지를 시행했습니다.

    야간통행금지는 해방 직후 미군정의 치안유지 편의를 위해 설정 된 뒤, 6.25전쟁과 남북분단을 거치면서 고착화되어 1982년 1월까지 약 37년간 지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