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알려주세요.
분청사기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알려주세요.
분청사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세요~
또,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는지도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분청사기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청사기는 고려말 상감청자가 쇠퇴하면서 백자와는 다른 형태, 무늬, 구도을 가지고 나타난 매우 독특한 자기입니다. 그 명칭은 백토로 분장한 회청사기, 즉 ‘분청회청사기’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분청’이라고도 합니다.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의 약칭으로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운 자기를 일컫습니다. 고려 시대 말기인 14세기 중반에 시작하여 세종~세조 시대인 15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16세기에 백자에 밀려 쇠퇴할 때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사기(도자기)는 전부 하얀색이었는데 거기다가 청색 유약을 바르며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에서 유래됐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14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중엽 사이에 생산되었고 15세기 전반 세종의 재위시기에 가장 다양하게 발전하여 전국에서 생산되었다.
분청사기 그릇의 형태는 고려시대의 것이 대부분 계승되면서 조금씩 변화되었으며, 대접의 경우 기벽이 비교적 얇고 구연부가 밖으로 벌어진 형태가 많다. 매병은 고려매병의 당당한 형태와 뚜렷한 차이를 보여 전체적으로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S자형의 굴곡이 심해지며 구연부가 넓은 큰 항아리가 늘어난다. 특히 제기(祭器)의 경우 고려시대에서는 볼 수 없던 기형으로 조선사회의 유교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우는 백토분장기법과 그 무늬에 있다. 백토분장의 동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 철분이나 잡물이 많이 섞인 조잡한 청자가 제작되자 이러한 잡물을 감추기 위하야 백토로 분장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또한 14세기 당시 중국도자가 청자에서 백자로 이행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백자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표면을 백색화하려 했다고 보기도 한다. 분청철회(鐵繪)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공주 계룡산록에서 발달한 기법으로 백토분장 위에 철분의 안료로 그림을 그린 분청사기이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당시 경기도 광주에서 한창 제작되던 백자청화의 영향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광주의 백자청화는 전문화원들이 그렸던 것에 비하여 계룡산 분청철회는 일반 도공들이 그려 구심살 없고 천진난만한 필치를 엿볼 수 있다. 물고기를 비롯한 문양들은 상상을 벗어나는 현대감각의 추상(抽象)이며 그 경지는 민화와 통하는 독창적인 세계라고 하겠다.
이 분청사기항아리는 구연(口緣)은 외반되었으며, 동체(胴體)의 중간에서 벌어졌다가 다시 좁아져 세워진 은행알과 비슷한 기형을 이룬 작은 항아리이다. 동체(胴體)의 상부(上部)와 중간에 각각 한 줄의 음각선(陰刻線)을 돌리고, 그 사이를 백토로 분장하고, 아래는 회청색 유약을 시유한 바탕을 그대로 두었다. 백토 분장한 동체(胴體)의 상부(上部)에 철사(鐵砂)를 이용하여 당초문(唐草文)이 단순하게 시유되었다. 유약의 시유 상태가 고르지 못하고, 빙렬(氷裂)이 있다. 굽은 다리굽이며, 굽다리 바닥에 내화토를 받치고 번조하였다. 기면(器面)에 물레 성형 흔적이 남아 있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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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분청사기는 13세기 경 청자에서 모티브를 얻어 변모, 발전한 자기로 조선 태종 때부터 약 200여년간 유행했습니다.
백토를 다양한 방법으로 분장해 무늬를 그렸으며 초기 꽃이나 나비 등의 모양을 도장처럼 찍어 무늬를 만드는 인화기법, 상감을 넣어 문양을 빚는 상감기법을 주로 사용, 후 크고 굵은 귀얄이라는 붓으로 백토 분장을 하는 귀열기법, 백토 물에 담갔다 꺼낸 분장기법, 백토 물에 담갔다 꺼낸 뒤 무늬를 그리고 이외 배경을 긁어내는 박지기법, 귀얄기법을 사용 후 철사안료로 무늬를 그린 철화 기법 등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부늬를 만들었습니다.
소박하고 순박한 형태와 친숙함, 텍스쳐와 문양을 통한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조선에서는 민간용으로 사용되었고, 16세기 중엽 이후 분청사기의 생산이 급격하게 줄게 되고 임진왜란 후 백자만이 남아 조선시대 도자기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분청사기는 고려시대 말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전통 도자기입니다. 분청사기는 13세기경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분청사기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중국의 청자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분청사기는 청자와 달리, 유약을 바르지 않거나, 유약을 바르더라도 맑은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흙의 색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입니다.
분청사기의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흙을 채취하여 반죽한다.
반죽한 흙을 물레에 올려 그릇을 만든다.
그릇을 건조한 후, 굽는다.
굽힌 그릇을 유약을 바르지 않거나, 맑은 유약을 바른다.
유약을 바른 그릇을 다시 굽는다.
분청사기는 주로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릇, 항아리, 접시, 술잔 등이 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는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분청사기는 현재에도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로 식기류,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분청사기는 한국의 전통 도자기로써, 관광 상품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분청사기의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약을 바르지 않거나, 유약을 바르더라도 맑은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흙의 색을 그대로 살린다.
흙의 색과 유약의 색이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표면에 기포나 작은 돌기들이 있어, 독특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내구성이 뛰어나며, 관리가 쉽다.
분청사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도자기로써, 그 아름다움과 우수한 기술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裝灰靑沙器)의 약칭으로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白土)로 표면을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운 자기를 일컫는다. 고려 시대 말기인 14세기 중반에 시작하여 세종~세조 시대인 15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16세기에 백자에 밀려 쇠퇴할 때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분청사기'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이 '미시마데'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것을 미술사학자 고유섭선생님이 처음으로 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