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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곤잘
라울곤잘23.11.20

백제와 신라의 전투중 관산성전투는 왜 일어난 것 인가요?

백제와 신라의 전투중 관산성전투는 가장 유명한데요.

이 관산성전투는 왜 일어났으며, 이 전투로 인하여 백제와 신라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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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시기에 백제와 신라, 가야가 연합하여 고구려를 치기 위한 북진군을 일으켰는데, 신라의 진흥왕이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공격해 한강 하류 지역에 신주를 설치합니다. 이것이 관산성 전투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백제가 군을 일으켜 신라와 대결하게 되는데, 관상성 전투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이 전투는 백제 성왕의 전사로 백제가 패하게 됩니다. 이 패배로 백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왕권중심의 정치운영체제가 귀족중심의 정치운영체제로 점차 전환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관산성 전투(554)은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동맹을 맺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각각 한강 하류 6군, 한강 상류의 죽령 이북 10군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강 상류지역을 차지한 진흥왕이 553년 군사를 돌이켜 백제를 공격하여 하류마저 점령하면서 관산성 전투를 촉발하는 동기가 됩니다.

    동맹국 신라 진흥왕의 배신에 대한 복수로 성왕은 군사를 일으켜 경주를 쳐들어가기로 계획합니다. 그러나 554년 관산성(현재 옥천 부근)에서 복병의 기습 공격으로 성왕이 전사하였습니다. 이로써 나제동맹은 완전히 깨지고 백제와 신라의 멸망할 때까지 적대관계가 계속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5세기 중엽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피살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고 웅진으로 천도합니다.

    웅진시대 초기 백제의 정세는 귀족들의 반란까지 겹쳐 불안한 상태였으나 동성왕과 무령왕대를 거치며 안정되어갔고 성왕대에 이르러 국가제도의 정비와 왕권강화가 이루어지면서 사비로 천도가 단행됩니다.

    사비천도를 전후 해 성왕은 내외의 제반 통치제도와 불교교단을 정비하는 등 체제정비를 도모함으로써 웅진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고 중흥을 이루며 사비천도를 통해 중흥을 이루자 성왕은 고구려에게 뺏긴 한강유역의 회복을 꾀하게 됩니다.

    이에 551년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북진군을 일으켰고 북진군은 배제군을 주축으로 동맹관계에 있던 신라군과 백제의 영향권에 있던 가야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으로, 이 시기 고구려는 안장왕의 피살, 양원왕 대 외척 사이의 내분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틈타 북진군은 백제군이 먼저 평양을 공격, 고구려군을 격파함으로써 승리의 기세를 잡았고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 하류의 6군을 회복, 신라는 한강 상류의 죽령 이북 고현 이남의 10군을 점령합니다.

    그러나 한강 상류지역을 차지한 신라의 진흥왕은 553년 군사를 돌이켜 백제를 공격,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지역마저 점련 후 그곳에 신주를 설치, 이것이 관산성 전투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동기가 됩니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게 된 배경에는 이 지역에 대한 신라의 영토적 야심이 컸고 신흥 돌궐족의 남하 압력을 받고 있던 고구려가 위기극복을 위해 신라와 화해하고 이를 통해 나제동맹을 와해시키고자 신라와 맺은 밀약도 주도, 이 밀약을 계기로 신라는 고구려의 묵인 아래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공격, 한강 하류지역까지 점령할수있었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고구려의 남진과 백제의 북진을 막으면서 중국과의 교통로를 확보, 인적, 물적 자원을 크게 증대시킴으로써 앞으로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는 토대를 마련합니다.

    관산성 전투는 양국이 국가의 운명을 걸었던 싸움으로 승리한 신라는 이미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유역에 대한 기득권을 확고히 할수 있었던 반면 백제는 막대한 전쟁 손실과 그 여파로 동성왕 이후 성왕대에 일시 강화되었던 왕권이 다시 동요되었습니다.

    기로 중심의 비전파들은 관산성 패전과 성왕의 전사를 계기로 정치적 발언권을 증대시켰고 이로써 왕권중심의 정치운영체제가 귀족 중심의 정치운영체제로 점차 전환되었습니다.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1세기 이상 양국 사이에 지속되어왔던 나제동맹은 완전히 깨졌고 이후 양국관계는 백제가 멸망할 때 까지 적대관계가 계속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노인옥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었던 관산성 전투는 554년에 관산성(管山城)에서 백제와 신라가 싸워 신라가 대승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한강을 차지하고 자 양국이 국가의 운명을 걸었던 싸움이었습니다. 따라서 승리한 신라는 이미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 유역에 대한 기득권을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제는 막대한 전쟁 손실과 그 여파로 인해 동성왕 이후 성왕대에 일시 강화되었던 왕권이 다시 동요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