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을 쓴 영국의 여성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는 어떻게 되나요?
고등학교시절 세계명작 중의 하나인 폭풍의 언덕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폭풍의 언덕을 쓴 작가는 영국의 여성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로 알고 있습니다. 훌륭한 명작을 남긴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에밀리 제인 브론테는 잉글랜드의 소설가로 성공회 사제인 패트릭 브론테 신부와 마리아 브랜웰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언니는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라고합니다. 그 밑으로 오빠가 있고 막내여동생 앤 브론테가 있었는데 이 중 오빠는 아편과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다 결핵으로 죽었으며 브론테 자매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워드의 사제관에서 이모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랐다고합니다. 이들은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학교를 열고자 했으나 실패했고 그의 오빠가 사망한지 3개월이 지나지 않은 1848년 12월 폐렴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고합니다.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주요한 생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밀리 브론테는 1818년 7월 30일에 영국 요크셔 지역의 소도시 토런필드(Top Withens)에 위치한 토런필드 교회 근처의 브론테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6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브론테 가정에서는 앤 브론테, 샬럿 브론테, 브란웰 브론테 등과 함께 자랐습니다.
에밀리는 1847년에 소설 "폭풍의 언덕"을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에는 조금 논란적이었지만, 이후에는 높이 평가되며 전 세계적으로 고전 소설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그후 작품이 출간된 직후, 1848년 12월 19일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생애는 짧았지만, "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문학적 유산을 계속해서 후대에 전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류 소설가 이자 시인으로 북부 요크셔의 황량한 고원에서 아일랜드인 목사를 아버지로, 샬럿과 앤의 자매로서 자랐습니다.
이 목사의 딸들은 카우언브리지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 배우고 고향의 학교에서 교원 생활 후 1842년 언니와 브뤼셀로 유학했으며
루소, 호프만, 쿠퍼를 애독하고 피아노와 시작을 즐겼습니다. 집안의 연이은 폐병과 죽음으로 인해 음침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그녀도 그 희생이 되나 아버지의 날카로운 감수성, 강한 의지, 냉정하기 짝이 없는 이성을 자매 중 누구보다 많이 이어받았습니다.
이모의 유산으로 제 자매는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벨의 시집'을 자비 출판했고, 그녀는 이 시속에서 시인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보이나 시집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손을 댄 것이 소설인데 20세기에 이르러 재평가된 에밀리의 명작 '폭풍의 언덕'은 이에 생겨났습니다.
에밀리도 폐병으로 쓰러지면서 의사의 진찰을 거부,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에밀리브론테는 1818년 7월 30일 잉글랜드 요크셔 손턴에서 태어나서 폭풍의 언덕 등을 남기고 1848년 12월 19일 잉글랜드 요크셔 호워스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당시 결핵으로 죽었으며 당시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공회 사제인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란웰의 셋째 딸로 태어났으나 언니들이 일찍 죽어서 어렸을 때 부터 집안의 맏이로 자랐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신 탓에 동생들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동생들에게 매우 엄격했다고 하는데 이에 에밀리는 샬럿을 골려주며 반항했지만 막내인 앤은 얌전히 순응했다고 한다고 합니다. 폭풍의 언덕은 당시 시대를 너무 앞서 갔고, 거기에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이 더해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영국 예술은 전통적으로 산문에 크게 꾸준히 뛰어났는데, 그 중에 손가락으로 작품 열 개를 꼽으라면 폭풍의 언덕을 아니 꼽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폭풍의 언덕은 '리어왕','모비딕'과 함께 영문학 최고걸작 비극으로 꼽히고 있으며 현재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문학 작품중 하나로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