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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홍관조27
착실한홍관조2723.09.18

구한말 일본의 고문정치는 어떤것을 말하나요?

안녕하세요? 구한말 일본이 고문정치를 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문정치는 어떤것을 말하나요?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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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문정치는

    일본이 한국을 속국으로 삼기 위해 고문을 파견하여 다스리던 일입니다.

    고문정치는 1904년 8월에 체결된 '한일 외국인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에 따라 일본이 대한제국의 재정, 외교 등을 간섭한 정치이다. 일본은 시정 개선을 명분으로 고문협약을 강요하고, 재정 고문 메가타 다네타로와 외교 고문 스티븐스(D.W.Stevens)를 파견하였습니다. 그 밖에 궁내부 고문, 경무 고문, 법부 고문, 군부 고문, 학정 참여관, 광산 고문을 비롯하여 보좌관, 교관 등의 명목으로 수많은 일본인 고문들을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내정 전반을 장악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고문정치는 1904년 8월에 체결된 한일 외국인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에 따라 일제가 대한제국의 재정 외교 등을 간섭한 정치를 말합니다. 일제는 시정개선 명분으로 고문협약을 강요하고 재정고문 메가다 다네타로 외교고문 스티븐슨을 파견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문정치는 고문을 통해 간접통치하는 통치유형을 말합니다.

    1904년 8월 22일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은 제 1차 한일 협약을 체결, 일본 제국은 대한제국 정부의 각부터에 일본인, 친일성향 외국인 고문을 임명해 이들 고문관들이 대한제국에 내정간섭을 하는 방식으로 간접통치했습니다.

    대하넺국 정부는 이들 고문관들과 협의를 거친 후 관계사항을 처리할수 있었고, 이들 고문관들의 권한은 대한제국 정부 정책에 임의로 변경할수 없었습니다. 이에 일본제국은 제 1차 한일협약서에 명시된 재정고문, 외교고문 이외에도 대한제국 정부의 자진 초청이라는 형식을 빌려 군사, 경찰, 궁내부, 학부의 제반, 행정 등 분야에 자국 일본인들을 파견해 감시, 감독을 강화했습니다.

    재정고문으로 파견된 자는 당시 일본제국 대장성 수세국장으로 근무하던 메가타 다네타로였는데 그는 부임 직후 재정, 화폐 개혁을 단행해 그것을 기반으로 한국경제를 식민지구조로 변화시켰습니다.

    외교고문으로는 친일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가 파견, 군사고문으로는 주한 일본공사관 부무관으로 근무하던 노즈 진부, 경무고문에는 일본 경시청 경시로 근무하던 마루야마 시게토시, 궁내부고문에 가토 마스오, 학부고문에는 동경고등사범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던 시데하라 등 각각 여러분야에 일본제국이 이들을 추천 임명하게 했는데 경무고문 이하의 4명은 원래 협약에도 없는 것을 강제로 임명하게 했으며 이들 고문관들은 일본제국으로부터 파견되어 대한제국 내정에 간섭합니다.

    이들 고문관들과 함께 보조관이라는 명목으로 10~100여명의 일본인이 파견되어 대한제국의 모든 내정들을 감시, 통제했고 대한제국 정부는 이름만의 정부일 뿐 실권은 일본인들이나 친일 외국인등 고문관들이 장악했습니다.

    이 고문정치는 후 1905년 제 2차 한일 협약으로 통감부가 설치되며 통감정치로 바뀌고 이로 인해 대한제국의 주권과 외교권은 완전히 상실, 친일 괴뢰정부화가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