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청계천은 어떤 곳이었나요?
조선시대에도 청계천이 있었을텐데요. 그 당시 청계천은 백성들에게 어떤 장소였나요? 빨래도하고, 씻기도 하는 누구나 사용가능한 공용공간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왕궁 근처에는 육조거리뿐만 아니라 청계천도 흐르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청계천은 개천이라고 불렸으며, 한양 도성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하천이었습니다. 또한 청계천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라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백성의 생활공간이었습니다. 청계천은 도성의 내부를 둘로 나누었으며, 북쪽으로는 궁궐, 종묘, 사직, 주요 관청들이 있었고, 남쪽에는 중 하류층의 백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청계천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들었는데, 나라의 허락을 받아 물건을 파는 사람들, 아픈 사람을 고치는 한의원, 다른 나라말을 통역하는 역관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청계천은 양반에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개천은 하천이 자연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닌 인공적으로 조성된 하천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아는 청계천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하천이라는 것이지요. 한양은 북한산, 인왕산, 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여서, 빗물이 시가지 중앙에 모였다가 지대가 낮은 동쪽으로 흐르는 과정에서 범람이 자주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조선 왕조는 빗물이 동쪽으로 잘 흘러가도록 개천을 파고 정비를 했으며, 1760년 영조는 개천 바닥 토사를 퍼내고 일부 수로를 직선화하는 대대적 준설공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출처: 에듀넷 티-클리어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계천은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600여년전 백성들을 품고 흘렀던 곳으로 원래 이름은 개천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산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분지의 모든 물이 한 줄기로 모여 내를 이룬것으로 누구나 사용가능하여 위생문제가 대두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