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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요셉
꿈꾸는요셉23.01.23
조선 시대에도 우리나라 경찰처럼 범죄 수사하는 기관은 어디였나요?

조선시대 때에도 우리나라 경찰처럼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을 텐데, 어떤 기관이고 어떤 업무들을 담당하였는지 궁금합니다.역사적인 지식이 짧아 사또, 이방, 포도청 정도의 단어밖에 생각이 안나네요ㅜ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의 검시제도>

    조선시대에도 범죄는 골칫거리였다. 살인 등 변사(變死) 사건이 발생하면 신중하고도 엄격한 절차를 거쳐 수사가 진행됐다. 시체를 검사하는 검시 책 임자는 고을 수령이었는데, 초검(初檢, 1차 검시)은 시신이 놓인 장소의 관할 수령이 담당하고, 복검(覆檢, 2차 검시)은 이웃 고을의 수령이 나섰다. 검시를 위해 수령이 사건 현장으로 출동할 때는 고을 아전을 보조 인력으로 데리고 가, 시신을 다루는 일부터 관련자 신문(訊問)까지 제반 실무를 지시했다.


    수사의 핵심은 첫째로 사망원인을 밝히는 것, 둘째로 목격자나 관련자들의 증언을 확보하는 일이다. 검시를 맡은 수령은 왜 죽었는가를 밝히는 문제에 더 집중했다. 사망에 이르게 된 직접적 원인을 알아야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출처:문화재청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의금부, 사헌부, 포도 등의 기관이 그 역할을 담당했었다고 보시면 되며(* 대검찰청, 경찰청 등), 물론 지방일 경우 그 지역 관아의 수령(부사, 목사, 군수, 현령&현감)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해서 처리했었다 보시면 되겠습니다. (* 지역 관아 = 지방검찰청, 법원의 역할)


  • 안녕하세요. 김진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찰관서는 포청(捕廳)으로 약칭되기도 하였다. 성종 때부터 중종에 이르는 동안에 그 제도적 완성을 본 것으로, 좌포도청 ·우포도청으로 나누어, 좌포도청은 한성부 정선방(貞善坊) 파자교(把子橋) 북동쪽(서울 종로구 단성사 일대)에 두고 한성부의 동부 ·남부 ·중부와 경기좌도(京畿左道) 일원을 관할하였고, 우포도청은 서부 서린방(瑞麟坊) 혜정교(惠政橋) 동쪽(서울 동아일보사 일대)에 두고, 한성부의 서부 ·북부와 경기우도(京畿右道)를 관할하였다.

    포도청은 병조(兵曹)에 딸린 무관직소(武官職所)로, 순조고종 때에는 좌 ·우 포도청에 각각 포도대장(종2품) 1명, 종사관(從事官:종5품) 3명, 군관 70명, 포도부장 4명, 포도군사 64명, 무료부장(無料部長) 27명, 가설부장(加設部長) 6명, 겸록부장(兼祿部長) 32명, 서원(書員) 4명, 사령(使令) 3명 등이 있었다. 좌 ·우 포도청에서는 각기 8패(牌:組)로 나누어서 패장(牌將) 8명과 군사 64명을 동원해서 담당구역을 순찰하였다. 1894년 포도청을 합하여 경무청으로 개편하였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경찰 기관은 포도청입니다. 죄인을 심문하고, 도적, 화재 등을 예방하기 위해 순찰했던 관서입니다. 일반 시민을 관할한 기관으로 갑오개혁 이전까지 전문화된 경찰기관으로 평가 됩니다.

    그외에 왕실에 대한 범죄를 조사하는 기관은 의금부, 백성들의 잘못한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기관으로는 사헌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