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rogermaan
rogermaan

스키타이 민족은 어떤 민족인가요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 민족은 황금을 숭상하는 전투 민족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민족이 었는지 그 배경과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키타이 민족이 궁금하군요.

      글쓴이님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전투 민족으로 보여집니다.

      BC 6세기~BC 3세기경 남부 러시아의 초원지대에서 활약한 최초의 기마유목 민족이라고 합니다.

      스키타이족은 BC 11세기경 볼가강 중류 지역에서 서서히 침투해 온 민족과 원주민과의 혼혈에 의하여 형성된 민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는 키메르인(人)과 함께 BC 9세기 경 가장 일찍 유목민화하였습니다. 민첩하고 강력한 기마민족이 된 이들은 BC 7세기에 소아시아·시리아 방면을 침범하고 BC 6세기에는 키메르인을 캅카스의 쿠반강 유역으로 쫓아내고 근거지를 아조우해 북부로 옮겼으며, 카르파티아산맥을 넘어서 도나우강 중류지대까지 세력을 확대시켰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키타이 민족은 오늘날 러시아 남부, 캅카스 동부,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에 거주했던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유목민족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들 스스로는 스콜로트라고 불렀으며 스키타이는 그리스인들이 부른 말로 고대 그리스어로 '궁수'(Skuthēs)에서 유래했다. 페르시아에선 샤카(Sakā)라고 불렀는데 뜻은 동일했다. 스키타이와 국경을 마주하던 아시리아에선 '유목민'이란 의미의 아스쿠자이(Askuzai)라고 불렀다.

      본디 이들은 그저 이란계 유목민족이었지만 기원전 11세기쯤 유입된 다른 이민족들과 섞이며 '스키타이'라는 정체성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기마 민족으로 채리엇이 아닌 직접 말을 타고 이동하며 싸웠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한 기원전 9세기 즈음에 킴메르족이라 불리는 다른 유목민족이 있었는데, 스키타이인들과 경쟁을 반복하던 중 스키타이의 기술이 좋아지고 수가 많아지자 기원전 7~6세기에 걸쳐 킴메르인들을 캅카스 지역 너머로 몰아내고, 텅빈 캅카스, 카르파티아 산맥도 넘으며 동서남북으로 크게 세력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세력이 점점 줄어들더니 기원전 4세기에는 서방에서 몰려온 이민족들에게 서방 영토 일부를 빼앗기고, 기원전 4세기에는 켈트족과 게르만족, 게타이족의 압박으로 서방의 영토를 영구히 상실했다.

      스키타이는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넓혔는데 당시 동쪽에 있던 스키타이 또는 샤카들의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할 때, 동쪽에서 흉노와 오손, 월지가 공격하여 남쪽인 그리스-박트리아와 파르티아로 옮겨가 두 국가를 침략했다. 한편 파르티아는 스키타이인들을 방어했으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은 멸망했다. 또한 스키타이들은 인도 북부에 있던 인도-그리스 왕국도 쳐들어가 인도-스키타이 왕국이 되었으나 세력이 약해져 파르티아의 세력 일부분에 멸망해 그 자리는 인도-파르티아 왕국으로 대체되었고, 그들이 페르시아화되었는지 멸망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사라지게 되었다.


      서쪽에 있었던 스키타이인들은 크림 반도와 그 근역에서 살아가다가 기원전 2세기에 세력이 약해지면서 사르마티아인과 알란인에게 흡수되었다. 그 후손이 오세트인이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7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남부 지방으로 이주하였던 유목 민족이다. 기원전 7세기부터 활동을 개시하여 기원전 6세기에 남러시아의 키메르 인을 몰아내고 강대한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동쪽으로부터 사르마트 족의 침략을 받아 해체되었다. 구덩식(竪穴式) 주거 외에 4륜차나 6륜차 위에 펠트 천장을 만들어 주거로 삼기도 하였다. 주로 유목,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리스 인들과의 교역도 행하였다. 스키타이는 전투력뿐만 아니라 그들이 건설한 문명도 탁월하였다. 이들 중 부유한 귀족 계급은 황금과 귀중품들로 가득찬 무덤을 남겼다. 짐승과 새를 도안화한 독특한 스키타이 문양을 고안하였으며, 청동제 일용품과 무기 · 마구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전해진다.

      출처 :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7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남부 지방으로 이주하던 유목민족으로 기원전 7세기부터 활동을 개시해 기원전 6세기에 남러시아의 키메르 인을 몰아내고 강대한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동쪽으로부터 사르마트 족의 침략을 받아 해체되었습니다.

      구덩식 주거 외에 4륜차나 6륜차 위에 펠트 천장을 만들어 주거로 삼았고 주로 유목, 농업에 종사했으며 그리스인들과의 교역을 했습니다.

      스키타이는 전투력과 그들이 건설한 문명도 탁월했고 이들 중 부유한 귀족 계급은 황금과 귀중품들로 가득한 무덤을 남겼으며, 짐승과 새를 도안화한 독특한 스키아티 문양을 고안, 청동제 일용품과 무기, 마구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전해집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키타이란 이름이 최초로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아시리아의 에사르하돈(Esarhaddon)왕(재위 기원전 681~669)의 연대기에서다. 아시리아인들은 그들을 ‘아슈쿠자이’(Ashkuzai)라고 불렀다. 기원전 7세기 후반부터 흑해 북안에 여러 개의 취락을 형성하고 스키타이와 교역을 시작한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스키타이’(Skythai) 혹은 ‘스키테스’(Skythes)라고 불렀다. 그러나 스키타이들은 자신을 ‘스콜로텐’(Skoloten), 혹은 ‘슈크’(Shk)라고 일괄 지칭하였다.

      아시리아인들의 ‘아슈쿠자이’나 그리스인들의 ‘스키타이’란 이름은 이 ‘스콜로텐’이나 ‘슈크’의 음사로 추측된다. 고유문자를 갖지 않은 스키타이에 관한 연구는 아시리아인과 그리스인들이 남긴 문헌기록이나 스키타이의 거주 유적과 분묘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키타이와 동시대를 살았던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25?)가 쓴 『역사(歷史)』(Historiai)와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ōn, 기원전 64~기원후 21년경)이 남긴 17권의 『지리서(地理書)』(Geographica)를 들 수 있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사이에 남러시아 초원지대를 본거지로 하여 활동한 이란계의 유목민이다. 그들은 기원전 7세기 전반에 강대한 유목민인 킴메르를 그들의 본거지인 북캅카스로부터 축출하고, 기원전 625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에 침입해 이집트까지 위협하였다. 그후 수차례에 걸쳐 서남아시아에 대한 침투를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강력한 기마 기동력을 보유한 스키타이는 흑해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 도시들과 교역을 하는 한편, 우랄 산맥을 넘어 멀리 알타이 지방까지 진출하는 동방 원거리 교역에도 종사하였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키타이 민족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현대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북서부 일대 스텝 지역에서 존속했던 이란계 유목민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