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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하늘소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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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페드루 1세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1820년대에 포르투갈에서 독립해 브라질제국이 성립된 것으로 알고있는데요.


브라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페드루 1세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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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포르투갈의 브라간사가 출신으로 페드루 4세의 이름으로 포르투갈 황제도 일시 겸했으며 1807년 11월 나폴레옹전쟁의 참화를 피하기 위해 왕실과 함께 브라질로 향하였고 1808년 3월 이루데자네이루에 상륙하였는데 아버지 주앙 6세가 1821년 귀국 후 브라질에 머물러 있다가 1822년 독립을 선언, 초대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독립 후 본국파와 브라질파가 대립하여 헌법제정회의를 폐쇄하고 1824년 3월 절대주의적인 신헌법을 공포, 이에 반대하여 무장봉기한 공화파를 무력으로 제압했습니다.

    1825년 우루과이의 귀속을 둘러싼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에 패하고 1828년 우루과이의 독립을 승인, 국민은 이에 불만을 표하고 1831년 대규모적인 반황제폭동으로까지 발전하여 황제는 5세인 황태자에게 제위를 물러져고 포르투갈로 귀국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는 제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분규가 일었는데 페드루는 한깨 제위에 올랐다가 딸인 마리아 다 글로리아에게 양위, 보수파에서는 친동생인 미겔을 옹립하고 마리아를 추방하나 그는 미겔과 싸워 이기고 마리아를 복위시킴으로 내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전제적인 반면에 예술을 애호했고 1900년까지의 포르투갈 국가의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브라질에서는 스페인령 남아메리카와 사뭇 다른 경로로 일이 진행되었다. 나폴레옹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침략했을 때, 포르투갈의 실질적 지배자는 이후 주앙 6세가 되는 왕자로, 그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 마리아 여왕을 대신해 섭정을 맡고 있었다. 1807년 그와 그의 가족은 포르투갈을 떠나 식민지인 브라질로 피신하여 리우데자네이루에 정착했다. 그들은 2,200만 파운드(오늘날로 치면 10억 파운드 이상)에 달하는 왕실 자금을 챙겼으며, 리우데자네이루는 세계 각지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 도시가 되어 번영을 누렸다.

    동 주앙은 브라질 국민 문화가 성장하도록 장려하고 바다 수영을 선보이는 등 영민하게 브라질의 국가적 자부심을 일깨웠으며, 1815년에는 새로이 포르투갈과 브라질 연합 왕국을 선포했다. 1816년 마리아 여왕이 사망했고, 1821년 주앙은 아들 페드루를 섭정으로 앉히고 자신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리스본의 포르투갈 의회는 브라질을 식민지의 지위로 되돌리기로 결의했으나, 페드루는 리스본이 요구하는 바대로 포르투갈로 돌아가기를 거절했다. 극적인 몸짓으로 칼을 휘두르며 그는 "독립이 아니면 죽음이다!"라고 외쳤고 곧 브라질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연애 사건을 자주 벌였던 페드루는 인망을 잃었고, 1831년 다섯 살 난 아들 페드루 2세에게 제위를 내주고 퇴위해야만 했다. 페드루 2세는 섭정 통치 기간을 거친 9년 후에 브라질의 황제이자 종신 보호자로 선포되었다. 그의 재위 시기는 브라질 역사에서 가장 번영한 시기 중 하나였으나, 여론이 군주제에 반대하는 쪽으로 흘러가면서 1889년 브라질은 공화국이 되었다.

    출처 :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