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의 『가례』를 언해한 "가례언해"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조선은 유교 사회로서 예의범절을 엄청 중시한 사회였습니다. 왕실은 물론 양반 사대부 가문도 격식을 따졌을 테고요. 가문마다 약간 달랐을텐데 나름 기준은 있었을 듯하고요. 주희의 『가례』를 언해한 "가례언해"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2년(인조 10년) 신식(申湜)이 『가례』를 언해한 책입니다.
언해의 방식을 설명한 범례, 가례도언해(家禮圖諺解), 가례서언해(家禮序諺解), 본문, 한문으로 된 발문(跋文) 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발문에는 “아버지가 만년에 언해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발문과 서두의 ‘숭정임신(崇禎壬申 : 1632년) 원성개간(原城開刊)’이라는 간기(刊記)에 의하여 강원도 원주에서 관찰사로 있던 신득연(申得淵)이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득연은 신식의 아들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소장본과 서울대학교 가람문고본의 두 이본이 있으나, 판식과 간기 및 내용이 똑같으므로 같은 계통의 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원주의 초간본을 중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책은 모두 10권 4책의 목판본으로, 사주쌍변(四周雙邊), 유계(有界, 10행 24자),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의 판심(版心), 간기, 내용, 글자체 등이 똑같으나, 판 크기는 전자가 큽니다.
그리고 후자에는 발문 끝에 ‘득연신참판식계자(得淵申參判湜季子)’가 붓으로 쓰여 있고, 제10권의 47·48면은 완전히 훼손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10권으로 짜여 있습니다.
제1권은 통례(通禮)·사당(祠堂), 제2권은 통례·사마씨거가잡의(司馬氏居家雜儀), 제3권은 관례(冠禮)·관(冠), 제4권은 혼례(婚禮)·의혼(議婚), 제5권은 상례 일(喪禮一)·초종(初終), 제6권은 상례 이(喪禮二)·성복(成服), 제7권은 상례 삼(喪禮三)·조석곡(朝夕哭)·전상사(奠上食), 제8권은 상례 사(喪禮四)·천구(遷柩)·조조(朝祖)·전부(奠賻)·진기(陳器)·조전(祖奠), 제9권은 상례 오(喪禮五)·우제(虞祭), 제10권은 제례·사시제(四時祭)·발문(跋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예(禮)에는 ‘본(本)’과 ‘문(文)’이 있으니, 명분을 지키는 것과 애경하는 일은 ‘본’에 속하며, 관례·혼례·상사·제사 등을 지내는 의식은 모두 ‘문’에 속한다.
‘본’은 집에서 일용에 떳떳한 예로써 하루도 닦지 않으면 안될 것이요, ‘문’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처음과 나중을 규정하는 것이니, 비록 그 행함에 시간과 장소가 있으나 하루도 강습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다.”라고 ‘예’의 본질을 규정하고 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를 좋아하여 배우려 하는 선비가 있어도 그 요령을 듣고 배우지 못하면 ‘예’에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이를 염려하여 예와 지금의 글과 서적을 깊이 연구하여 집대성하였으니, 원컨대 뜻이 같은 선비는 하루빨리 익혀서 힘써 행하면 옛사람들과 같이 심신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도리와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국가의 교화를 숭상하며 백성을 인도하는 뜻에도 적으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간행 취지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연호·인물·서명 중에서 중요한 단어에 대한 주석을 난 위에 달아 놓아 특이하며, 『가례』를 널리 알린 공적도 있다. 이 책은 17세기 국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특히 가족 명칭 등 당시의 어휘 자료를 제공하는 점에서 국어사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1983년홍문각(弘文閣)에서 영인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례언해 [家禮諺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송나라 주희가 지은 가례를 시식이 언해하고 그의 아들 신득연이 1632년 강원도 원주에서 간행한 유교 예절 설명서 입니다.
제1권은 통례, 사당, 제2권은 통례, 사마씨거가잡의, 제3권은 관례, 관, 제4권은 혼례, 의혼, 제 5권은 상례일, 초종, 제 6권은 상례 이, 성복, 제 7권은 상례 삼, 조석곡, 전상사, 제 8권은 상례 사 , 천구, 조조, 전부, 진기, 조전, 제 9권은 상례 오, 우제, 제 10권은 제례, 사시제, 발문으로 구성됩니다.
서문에서 예에는 본과 문이 있으니 명분을 지키는 것과 애경하는 일은 본에 속하며 관례, 혼례, 상사, 제사 등을 지내는 의식은 모두 문에 속합니다.
본은 집에서 일용에 떳떳한 예로 하루도 닦지 않으면 안될 것이요, 문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처음과 나중을 규정한 것이니, 비록 그행함에 시간과 장소가 있으나 하루도 강습하지 아니하면 안될것이다. 라고 예의 본질을 규정하고 그 실천을 강조합니다.
또 예를 좋아하여 배우려 하는 선비가 있어도 그 요령을 듣고 배우지 못하면 예에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이를 염려하여 예와 지금의 글과 서적을 깊이 연구하여 집대성하였으니, 원컨대 뜻이 같은 선비는 하루 빨리 익혀 힘써 행하면 옛사람들과 같이 심신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도리와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국가의 교화를 숭상하며 백성을 인도하는 뜻에도 적으나마 도움이 될것이다 라고 간행 취지를 밝힙니다.
이 책은 연호, 인물, 서명 중 중요한 단어에 대한 주석을 난 위에 달아 놓아 특이하며 가례를 널리 알린 공적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의
조선시대 문신 신식이 주희의 『가례』를 언해하여 1632년에 간행된 예서.
내용
언해의 방식을 설명한 범례, 가례도언해(家禮圖諺解), 가례서언해(家禮序諺解), 본문, 한문으로 된 발문(跋文)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문에는 “아버지가 만년에 언해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발문과 서두의 ‘숭정임신(崇禎壬申)주 01) 원성개간(原城開刊)’이라는 간기(刊記)에 의하여 강원도 원주에서 관찰사로 있던 신득연(申得淵)이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득연은 신식의 아들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소장본과 서울대학교 가람문고본의 두 이본이 있으나, 판식과 간기 및 내용이 똑같으므로 같은 계통의 책으로 볼 수 있다. 즉, 원주의 초간본을 중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책은 모두 10권 4책의 목판본으로, 사주쌍변(四周雙邊), 유계(有界, 10행 24자),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의 판심(版心), 간기, 내용, 글자체 등이 똑같으나, 판 크기는 전자가 크다.
그리고 후자에는 발문 끝에 ‘득연신참판식계자(得淵申參判湜季子)’가 붓으로 쓰여 있고, 제10권의 47·48면은 완전히 훼손되어 있다. 본문은 10권으로 짜여 있다.
제1권은 통례(通禮)·사당(祠堂), 제2권은 통례·사마씨거가잡의(司馬氏居家雜儀), 제3권은 관례(冠禮)·관(冠), 제4권은 혼례(婚禮)·의혼(議婚), 제5권은 상례 일(喪禮一)·초종(初終), 제6권은 상례 이(喪禮二)·성복(成服), 제7권은 상례 삼(喪禮三)·조석곡(朝夕哭)·전상사(奠上食), 제8권은 상례 사(喪禮四)·천구(遷柩)·조조(朝祖)·전부(奠賻)·진기(陳器)·조전(祖奠), 제9권은 상례 오(喪禮五)·우제(虞祭), 제10권은 제례·사시제(四時祭)·발문(跋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예(禮)에는 ‘본(本)’과 ‘문(文)’이 있으니, 명분을 지키는 것과 애경하는 일은 ‘본’에 속하며, 관례·혼례·상사·제사 등을 지내는 의식은 모두 ‘문’에 속한다.
‘본’은 집에서 일용에 떳떳한 예로써 하루도 닦지 않으면 안될 것이요, ‘문’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처음과 나중을 규정하는 것이니, 비록 그 행함에 시간과 장소가 있으나 하루도 강습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다.”라고 ‘예’의 본질을 규정하고 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를 좋아하여 배우려 하는 선비가 있어도 그 요령을 듣고 배우지 못하면 ‘예’에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이를 염려하여 예와 지금의 글과 서적을 깊이 연구하여 집대성하였으니, 원컨대 뜻이 같은 선비는 하루빨리 익혀서 힘써 행하면 옛사람들과 같이 심신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도리와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국가의 교화를 숭상하며 백성을 인도하는 뜻에도 적으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간행 취지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연호·인물·서명 중에서 중요한 단어에 대한 주석을 난 위에 달아 놓아 특이하며, 『가례』를 널리 알린 공적도 있다. 이 책은 17세기 국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특히 가족 명칭 등 당시의 어휘 자료를 제공하는 점에서 국어사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1983년홍문각(弘文閣)에서 영인하였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문에서는 “예(禮)에는 ‘본(本)’과 ‘문(文)’이 있으니, 명분을 지키는 것과 애경하는 일은 ‘본’에 속하며, 관례·혼례·상사·제사 등을 지내는 의식은 모두 ‘문’에 속한다.
‘본’은 집에서 일용에 떳떳한 예로써 하루도 닦지 않으면 안될 것이요, ‘문’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처음과 나중을 규정하는 것이니, 비록 그 행함에 시간과 장소가 있으나 하루도 강습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다.”라고 ‘예’의 본질을 규정하고 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를 좋아하여 배우려 하는 선비가 있어도 그 요령을 듣고 배우지 못하면 ‘예’에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이를 염려하여 예와 지금의 글과 서적을 깊이 연구하여 집대성하였으니, 원컨대 뜻이 같은 선비는 하루빨리 익혀서 힘써 행하면 옛사람들과 같이 심신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도리와 지나간 일을 회상하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국가의 교화를 숭상하며 백성을 인도하는 뜻에도 적으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간행 취지도 밝히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