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저기 여진족에 대해서 질문드립니다.
말갈족이 여진족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계사 과목인데
말갈족이 어떤식으로, 왜 여진족으로 된 것인지 알고싶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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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직(女直)으로도 쓰며 그 명칭은 시대에 따라 달라, 춘추전국시대에는 숙신(肅愼), 한나라 때는 읍루(悒婁), 남북조시대에는 물길(勿吉), 수·당대에는 말갈(靺鞨)로 불리다가 10세기 초 송나라 때 처음으로 여진이라 했으며 청나라 때는 만주족이라 칭했다. 여진족은 크게 만주의 길림성 동북지방에 산거하는 생여진(生女眞) 또는 흑수여진과 그 서남에 산거하는 숙여진(熟女眞)의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대개 거란의 지배권 밖에서 산만한 부락생활을 했으며 후자는 대체적으로 거란에 복속되어 있었다. 여진족은 발해 때부터 점차 남으로 퍼져나와 나말여초에는 동북으로 함경도 일대와 서북으로는 압록강 남안 및 평북일대까지 흩어져 살게 되었다. 고려에서는 동북방면의 여진을 동여진 또는 동번(東蕃)이라 하고 서북방면의 여진을 서여진 또는 서번이라 불렀다.
12세기 초 생여진 중 완옌부(完顔部)의 세력이 커지면서 고려와 충돌이 발생하자 고려는 윤관의 지휘하에 17만 대군을 파견해 여진족을 소탕하고 9성을 쌓았으나 여진족의 애원으로 9성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완옌부의 세력은 점차 강대해져 그 추장 아구타(阿骨打)는 1115년 여진족을 통합, 금을 세웠으며 1117년에는 고려에 형제관계를 요구했다. 1125년에는 요를 멸망시킨 뒤 송을 공격해 정강의 변을 일으켜 중국의 화북지방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때 금은 고려에 사대의 예를 강요했는데 당시 집권자인 이자겸 등은 금과 타협을 통해 평화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금은 몽골의 침략으로 1234년에 멸망했고, 이후 여진족은 만주일대에 흩어져 살면서 원·명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출처 : 한국고중세사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