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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24

조선 흥선대원군은 어느 왕의 직접적 후손인가요

고종은 혈통상 관계로 왕이 될 수 없는 방계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인 대원군은 쫓아 올라가면 직접적으로 어느 왕의 후손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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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성대원군은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의 직계후손이기 때문에 직계 왕통과 촌수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동생 은신군의 양자가 되면서 직계 왕실과 가까운 종친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연군이 아버지입니다.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이며, 1868년 그의 묘가 독일인 E.J.오페르트 등에게 도굴되어 외교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처음 이름은 채중(寀重)이었으나, 은신군에 양자로 입적하면서 구(球)로 개명하였다. 인조의 아들인 인평대군(麟平大君)의 6세손(世孫) 병원(秉源)의 둘째 아들이자 고종의 생부(生父)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이다.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자 은신군(恩信君) 진(禛)은 숙종의 여섯째 아들 연령군(延齡君)의 손자로 입양되었고, 은신군이 후사가 없어 남연군이 그의 양자가 되었다.

    1815년(순조 15) 수원관(守園官), 1821년 수릉관(守陵官) 등을 지냈다. 1829년(순조 29) 영조와 진종(眞宗) 및 정조의 어필을 간행하여 보존할 것을 상소하였고, 1834년에는 공조판서 김유근 등과 함께 종척집사(宗戚執事)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그의 묘는 경기도 연천에 있었으나 흥선대원군에 의해 충청도 덕산(德山:예산군)으로 이장하였고, 현재 그의 신도비는 지방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1868년(고종 5) 독일의 상인 E.J.오페르트 등에 의하여 묘가 도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흥선대원군의 쇄국양이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20년 12월 21일, 서울 안국동에서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하응의 가계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서 파생되었다. 사도세자가 세자빈 홍씨에게서 얻은 아들이 정조이고, 궁녀 숙빈 임씨에게서 얻은 세 아들 중 둘째 아들이 은신군(恩信君)이었다.


    은신군이 후사가 없어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의 5대손 이병원(李秉源)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는데, 바로 그가 이하응의 친부 남연군 이구이다. 이하응은 네 형제 중 막내로서 위로 이창응(李昌應) · 이정응(李晸應) · 이최응(李最應) 세 형이 있었다. 여흥 민씨 민치구(閔致久)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3남 3녀를 두었다.


    큰 아들은 완흥군(完興君) 이재면(李載冕), 둘째 아들은 익성군(翼成君) 이재황1), 그리고 서자로 완은군(完恩君) 이재선(李載先)이 있었다.

    출처 :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하응(李昰應)은 1820년 영조의 현손 남연군 구(南延君球)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는 시백(時伯)이고

    호는 석파(石坡)이며, 1841년 흥선정(興宣正)이 되었고 1843년에는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졌습니다. 종친부의

    유사당상(有司堂上)과 오위도총부의 도총관 등의 관직을 역임했으며, 1863년 12월 8일 철종이 죽자 그의 둘째 아들 명복이 출계(出系)하여 익종(효명세자)의 뒤를 잇는 형식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자료출처: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