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흥남철수작전의 과정과 그 의의가 궁금합니다
1950년 우리나라에는 지울 수 없는 슬픈 일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6.25전쟁이죠. 역사를 배울 때 참 많은 것들에 대해서 들었는데요. 최근에는 영화의 소재로도 사용이 되어서 더욱 실감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는 허구와 과장도 많이 섞여있어서 객관적으로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상황을 짐작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6.25때 흥남철수작전의 과정과 그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군이 개입하면서 혜산진과 두만강 방면으로 나아갔던 미군과 한국군은 병력의 열세와 강추위를 극복하지 못해 12월 이후 후퇴할수 밖에 없었고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나섰던 미 제 1해병사단도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군의 대규모 병력에 포위되어 전멸될 위기에 빠져 결국 전세가 불리해지자 유엔군 사령부는 1950년 12월 8일 동부전선에서 북진에 나섰던 미 제 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의 병력에 대해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미 제10군단은 휘하의 모든 부대에 철수해 흥남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려 약 10만명에 이르는 미군과 한국군이 흥남에 집결, 그곳에서 12월 15일 ~12월 24일까지 열흘에 거쳐 193척의 선박을 타고 38선 이남 지역으로 철수했습니다.
한편, 당시 철수하는 미군과 한국군을 따라 10만여명에 이르는 피난민도 38선 이남지역으로 내려오는데 당시 미 제10군단의 고문으로 활동하던 현봉학의 요청으로 수많은 피난민이 군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특히 군수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는 화물을 버리고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까지 그들을 이송해주었고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한때 가장 많은 난민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했습니다.
흥남철수작전은 대규모적인 육해공 합동작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 같은 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상당한 전투력을 보존해 다음 단계 작전을 수행할수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