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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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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의 영향에 대해 알려주세요~

20세기 초부터 1974년까지의 포르투갈은 어떤 정치적인 변화와 사회적인 변동을 겪었나요? 특히 카네이션 혁명 등 중요한 사건과 그 영향에 대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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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카네이션 혁명은 1974년 4월 일어난 군부의 무혈 쿠데타로 종결됩니다.

    민주화를 목표로 좌파 소장파 장교들에 의해 발생한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제 3공화국이 출범, 1975년까지 모든 해외 식민지들이 독립, 정권을 잡은 군부는 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했으며 독재 정권을 유지했던 국민연합당은 해체되고 새로운 정당들이 활동을 개시, 쿠데타 후 대통령에 취임한 안토니우드 드 스피놀라 장군은 좌파의 압력으로 1974년 9월 사임, 프랑시스코 다 코스타 고메스 장군이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1975년 3월 스피놀라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 이를 계기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더욱 좌경화되었고 최고군사혁명 평의회를 통해 국가를 통치합니다.

    1976년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명문화한 신헌법이 채택되어 4월 포르투갈 국민들은 50년 만에 민주적 방법으로 제헌의회 선거를 치뤘고 선거에서 사회당이 득표율 434.9%로 107석을 획득, 제 1당이 되어 입법의회가 탄생합니다.

    7월 소아레스를 총리로 하는 사회당 단독내각이 발족함으로 단원제 의회제 민주주의의 형태가 성립, 제 3공화국 헌법은 토지개혁이나 산업의 국유화 등을 명문화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헌법이었고 정부 구성 역시 사회당은 민주대중당 및 군부와 협력해 연입정부를 구성했으나 카네이션 혁명을 완수한 군부는 이들 정당보다 훨씬 급진적이어서 공산당과 협력하고 있었으며 이를 우려한 사회당과 민주대중당이 이탈해 연립정부를 붕괴시키면서 정국은 더 혼미해졌으며 군부 내의 우파 세력이 반격하는 등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해집니다.

    카네이션 혁명 이후 집권한 사회당 주도의 정부는 경제위기와 정치적 불안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1979년 보수파연합의 민주동맹에 정권을 넘겨주며 보수파 정권은 국유화 정책의 완화, 농민이 접수한 농지의 일부 반환 등 자유경제 체제로의 복귀를 목표로 하면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1976년 헌법을 개정, 1986년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해 EEC로부터 기금을 받아 경제발전을 가속화하고 기업들은 유럽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수 있게 되며 경제적 안정을 이뤘습니다.

    1990년대 이르러 사회당과 사회민주당의 주도로 양당체제가 이룩되며 정치적으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1999년과 2002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 동티모르 역시 독립이 승인되어 식민지를 모두 잃고 순순한 유럽국가로 돌아갔습니다.

    2000년에 들어서며 사회당이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무능을 보이는 틈을 타 사회민주당이 지방과 중앙정부에서 정권을 획득, 사회민주당은 인민당과 함께 중도우파 정부를 구성해 정국의 안정을 이루며 2004년 총리였던 바로수가 유럽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는 등 사회민주당은 국내외적으로 포르투갈을 안착시키는데 기여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혁명의 결과로 포르투갈 제2공화국 정부가

    붕괴되었고,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의 포르투갈령 식민지들의 독립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카네이션 혁명은 1974년 포르투갈 제2공화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당시 독재를 일삼던 포르투갈 제2공화국 정부를 무너뜨리고 포르투갈이 민주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현지에서는 4월 25일 혁명(25 de Abril)이라는 말을 쓰며, '리스본의 봄'이라는 별명이 있다.

    포르투갈 제2공화국에서 30년 이상 독재를 하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퇴임한 뒤 카에타누 정권이 집권했지만 경기 침체와 식민지들의 독립을 틀어막는 지지부진한 전쟁이 계속되면서 불만이 쌓이던 중, 마침 닥쳐온 오일쇼크로 경제가 낙후되어가자 이스타두 노부(제2공화국) 정권에 비판적인 포르투갈군 내 좌파 청년 장교들이 주도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카네이션 혁명이란 이름은 쿠데타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독재 정권을 몰아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쿠데타를 혁명으로 인식하고 지지한다는 의미로 거리의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준 데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그 군인들은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음으로써 화답한다.

    또한 이 혁명의 결과로 포르투갈 제2공화국 정부가 붕괴되었고,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의 포르투갈령 식민지들의 독립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혁명 직후 각 식민지에서 포르투갈군과 식민지 독립군들과의 전투가 중단되었고, 곧 포르투갈령 기니(현재의 기니비사우)를 시작으로 1999년까지의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