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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3.08.24

석굴암을 일제는 왜 파손하고 시멘트를 바른건가요?

일본은 조선강점기에 석굴암을 해체하고파손하고서 석굴암에 시멘트까지 바르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이런 이상한 짓까지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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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복원공사를 하다 실패했다고 합니다.

    만약 해체 보수를 매뉴얼대로 제대로 했다면 이 석재들은 다시 제대로 조립되었든지, 아니면 최소한 어느 지점에 있던 몇 번 석재 같은 메모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제는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제대로 조사기록을 남기지도 않고 주먹구구로 해체공사를 추진했습니다.
    결국 일제의 야심찬 복원 계획은 거액만 쓰고 망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석굴암을 일본으로 가져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가져 갈 수 없다 판단하여 헤체하다 방치 하였습니다.

    그러다 복원한다는 것이 시멘트로 바른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입장에서는 석굴암을 복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콘크리트를 사용 했으나

    당대에는 콘크리트의 특성에 대해 지금처럼 정밀하게 이해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기에 일어난 참사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잊힌 유적을 발굴해 복원하는게 국가 위신을 위한 사업으로 크게 유행했기에 당연히 일본도 이 트랜드를 따라 석굴암 복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석굴암은 조선 말기까지 경주 지역 사람들이 이용하는 절이었습니다.

    그런데 1907년 석굴암을 발견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것처럼 선전하고

    석굴암을 해체 반출하려는 음모를 꾸밀 때 경주 지역 사람들의 반발로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초대 총독 데라우치가 석굴암을 방문한 뒤 1913년 중수를 시작하면서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원형을 변형시켜 버렸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를 사용하면서 통풍구를 막아 버렸고,

    그 결과 결로현상으로 습기가 차면서 석굴암은 고난에 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