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재추회의 때문에 고려가 민주적인 사회이자 귀족사회였다고 하던데 무엇이 맞는 말인가요?
2품이상의 중서문하성 관리들과 중추원의 추밀 관리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기구로 재추회의가 있었는데요. 이 재추회의를 두고 고려가 귀족사회였다는걸 반증한다라는 얘기도있고, 민주적인 회의기구였음을 나타내기도 한다던데 무엇이 맞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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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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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재추회의는 대부분 귀족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귀족사회였다는 것을 반증하기도하면서
동시에 여러 귀족들이 참여해 각자의 의견을 냈기 때문에 민주적인 회의기구였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회는 기본적으로 귀족 사히 임은 분명 합니다. 하지만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재신(宰臣)과 중추원(中樞院)의 추밀(樞密)이 모여 주요한 국정 현안을 논의하던 회의체인 재추회의의 존재는 고려에서 국왕과 함께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관리들의 회의라는 점에서 국왕과 재상 사이의 상호 견제와 협력의 원리가 관철되었던 것이기에 그것은 우리 역사 속의 민주주의 실천 사례라고 보는 것 입니다. 즉 귀족 사회인 로마에서 평민들의 대표인 호민관 제도가 있었다고 해서 로마 사회가 귀족 사회가 아닌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 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