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여론조사가 있었다는데, 어떻게 실시한건가요?
지금처럼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백성들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된 것도 아니었을텐데요.
그런데 심지어 여론조사를 하기도 했다던데,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조사를 수행했나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울 안의 전함 각 품관과 각도의 감사, 수령 및 품관, 여염의 세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는 명을 내려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방법이 다양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이나 관리들은 백성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직접 거리로 나가거나, 지방관들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집했습니다. 또한, 신문고나 상소 제도를 통해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세종 대에 여론 조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전국의 전·현직 관리는 물론이고 세민(細民·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에게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 그 결과를 아뢰도록 하라.” 1430년(세종 12년) 3월 5일 세종대왕은 가히 혁명적인 명을 내리는데 호조가 ‘전답 1결 당 조 10두 징수’를 골자로 한 공법(세금) 방안을 제출하자 세종이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지시한 것입니다. 이 최초의 여론조사에는 무려 5개월여가 걸렸다고 하니 꼭 4개월이 지난 7월5일에는 ‘여론조사 중간점검 회의’까지 열었다고 합니다. 이때 호조판서 안순(1371~1440)은 “지금까지의 조사를 보면 경상도에서는 찬성이 많고 함길·평안·황해·강원 등은 반대가 많다”고 중간보고했고 세종은 “각 도의 (여론 조사) 결과가 도착하면 중앙 및 지방의 관리들은 공법의 장단점과 해결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여론조사가 있긴 하였습니다.
보통 세금법 개편 등을 위한 여론조사가
세종대왕 떄 있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