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층층마다 양식이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탈리아 콜로세움을 보면 1층 벽채는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토스식으로 되어 있는데요.
혹시 이렇게 양식을 다르게 만든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완공됐을 당시의 원형 경기장의 크기는 일부만 남아있는 현재보다 훨씬 컸다고 합니다. 외벽의 높이는 52m에 달했으며 상술한 네로의 개인 궁전에서 뜯어낸 각종 조각상들을 외벽의 아치 내부에 배치했습니다. 외벽 처마와 기둥도 1, 2, 3층이 각각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다른 외양을 취하고 있습니다. 베수비오 화산에서 나오는 화산재를 이용한 콘크리트 같은 특수 건축재와 무게를 분산시키는 아치형 구조를 채택해 비교적 적은 자재로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상층에는 나무 기둥이 설치되어 햇빛이 강한 날에는 오늘날의 돔구장처럼 천으로 된 차양막이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한편 이 큰 경기장의 부지를 제공하고 그 많은 아치에 들어갈 조각상을 죄다 충당하게 한 네로의 '황금 궁전'이 얼마나 사치스러웠을지 예상할 수 있다. 궁 중앙의 인공 연못은 마치 바다를 연상시켰다고 전할 정도라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크기의 건물인지라 베스파시아누스도 아니고 티투스도 아닌 도미티아누스의 치세때 완공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언급하자면, 첫 개장은 티투스의 치세인 서기 80년에 한 것이 맞으나 이후 도미티아누스가 기존 3층이었던 콜로세움에 1개 층을 더 얹어 서기 82년에 4층으로 완공시킨 것이이라고 합니다.
찬란한 위상을 자랑했던 콜로세움이었지만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그대로 방치되었다고 합니다.최상층인 4층 벽 위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뜨거운 햇빛을 막기 위한 거대한 차양이 설치되었어요. 이 차양을 받쳐주는 204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으며 필요에 의해 펼쳤다 접었다 할 수 있었습니다. 벨라리움(Velárĭum)이라는 이 시설은 선박의 돛을 펼치는 원리와 같았기 때문에 로마 최대 해군기지가 있던 미세눔(지금의 나폴리 인근)에서 수병들이 파견 나와 조작했습니다. 당시 지중해 일대는 로마가 모두 장악했기 때문에 해군의 역할이 크게 없어 수병이 경기장 차양막 치는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세 때는 요새로 사용되다가 19세기까지 방치되어 있었으나 이후에 기독교의 성지로 지정되어 교황의 명에 따라서
복원,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건축양식이 다른 것은 역사적인 사건들과 관련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