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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쌍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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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부인 29명 너무 많은데 바람둥이인가요?

고려시대, 왕건의 부인29명인가요? 어마어마 하네~ 왜 그렇게 많은가요?

저라면 그러지 못할텐데 왕건의 권력때문에 그런가봐 모르겠지만 설마 바람둥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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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람둥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있습니다.

      왕건은 새나라를 건국하며 권력을 탄탄히 하고자 각지방의 실권을 쥐고 있는 호족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했기 때문에 그 방법으로 계약 혼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삼국시대는 어떤 세력이 얼마나 호족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오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시기였습니다.


      왕건은 성공했고, 궁예ㆍ견훤은 실패한 거죠.



      - 사성정책: 항복한 호족에게 왕씨 성을 내려줌


      - 혼인정책: 힘 있는 호족들과 결혼으로 가족이 됨


      - 기인제도: 지방 향리의 자식을 뽑아 개경에서


      일하도록 정한 제도(일종의 인질)


      - 사심관: 힘 있는 호족 공신을 고향의 사심관으로


      보내 그 지역의 향리를 통제했던 제도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건의 부인 29명의 고향을 자세히 살펴 보면 전국 각지의 호족들의 자식들이 였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경기도 전부 다 고향이 틀립니다. 왕건이 고려를 세울 떄 후삼국에는 호족들의 권력이 워낙 막강해서 왕권은 호족 세력들을 규합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정략 결혼을 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권강화를 위해서

      왕건은 세력이 강한 호족의 딸들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 29명이나 되었는데

      29명 중 첫 번째 부인 신혜왕후와 두 번째 부인 장화왕후를 제외하고는

      전부 호족과 연합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일생 동안 29명에 이르는 많은 후비를 두었다. 태조는 29명에 이르는 부인들로부터 25명의 왕자와 9명의 공주를 얻었다. 태조가 이렇게 많은 부인을 두게 된 것은 혼인관계를 통해서 강력한 호족 세력을 통합하고자 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략결혼 외에도 왕가의 혈통을 확장시켜 왕실을 공고히 하고자 한 의도도 있었다.


      고려 시대 왕실 여성들은 각각 그 위치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예컨대 왕의 모는 왕태후라 부르고 적처는 왕후라 했으며 첩은 부인이라 호칭했다. 따라서 29명의 후비들은 각각 그 위치에 따라 그 격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