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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남생이120
조용한남생이12023.03.27
우리 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전파 된 것에 대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근본적인 유교 국가인데 어떻게 천주교가 조선 땅에 들어 왔으며 짧은 시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이 생겨난 것인지 궁금합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주교가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개항을 해야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천주교를 믿게 되었던 이유는 썩어빠진 조선의 왕을 믿는 것 보다는 우수한 기술을 가진 서양인들의 신을 믿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0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 가톨릭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광해군 시절인 1610년에는 대문장가 허균이 청나라에 갔다가 기도문의 일종인 <제 12장>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천주교 관련 서적으로는 최초로 여겨지고 있으며, 1614년에는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이탈리아인 신부 마테오 리치와 그의 저서 천주실의를 소개하기도 했었다. 그 뒤 이이명, 홍대용, 서호수 등이 천주교에 관심을 갖기도 했으나 홍대용은 학문의 입장에서 다소 비판적인 견지를 하고 있었으며, 서호수는 신부를 만나지 못하는 바람에 아무 소득도 없이 귀국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조선에 가톨릭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성호 이익과 안정복에 의해서였다. 이익은 본인이 천주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학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안정복도 이후의 홍대용처럼 다소 비판적인 견지를 가지기도 했으나 천주교 자체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이들의 집안을 중심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생겼으며, 영조 시대인 1750년대에는 황해도와 강원도 지방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국내 가톨릭교회의 시작은 후술할 이승훈 베드로가 조선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1784년으로 보고 있다. 지난 1984년 교황으로는 처음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목적이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및 천주교 서울대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이었던 만큼 이를 정설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위에 설명하는 것보다 5년 정도 앞선 1779년을 기념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소재 천진암은 남인 계열 유학자 정약용, 이벽, 이승훈 등이 1779년부터 모여 천주교 서적을 읽었던,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꼽히는 곳으로, 이곳에 건설되고 있는 천진암 대성당은 이들이 모임을 시작한 지 300주년이 되는 207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가톨릭/대한민국


  • 안녕하세요.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온 배경은 다양합니다. 첫째, 17세기 중반 유럽인 선교사들이 중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선교사들은 천주교를 전파하며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둘째, 19세기 중반부터는 중국에서 천주교인들이 조선으로 이동하면서 천주교가 조선에서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천주교가 조선에서 빠르게 유행한 이유는 다양합니다. 첫째, 조선 후기의 사대부들 중 일부는 선교사들의 의료 서비스나 외교적 활동 등을 통해 천주교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둘째, 천주교는 유교와 차이가 있던 신앙 체계를 가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호기심이나 이타적인 마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끌렸습니다. 셋째, 천주교는 유럽의 문화와 기술, 의학 등을 소개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조선 사람들은 이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천주교는 당시에는 침탈적인 외교 활동이나 종교적인 대립 등으로 인해 당국의 반감을 샀습니다. 따라서, 천주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했으며, 이는 맹목적인 신앙심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게 된 배경과 이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지만, 당시의 조건들과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 등이 모여 천주교가 조선에서 유행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594년(선조 27) 포르투갈 신부인 세스페데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종군신부로 입국한 그는 이후 많은 선교활동을 하였고, 북경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면서 천주교 서적을 수입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본격적으로 조선에 가톨릭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성호 이익과 안정복에의해서이며 이익은 본인이 천주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학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했고 안정복도 이후의 홍대용처럼 다소 비판적인 견지를 가지기도 했으나 천주교 자체에 관심은 많았고

    이들의 집안을 중심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생겼으며 영조시대 1750년대에 황해도와 강원도 지방을 중심으로 전파되었습니다.


  •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1764년,이승훈이 북경에서 프랑스인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왔을 때부터 본격적인 신자들의 모임이 시작되었다.그런데 그 이전에 서학을 연구하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생겨났다.이승훈은 귀국하여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명례방에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루어졌다.이와같이 외국인 선교사가 천주교를 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것이다.이는 세계 교회사에서 유일한 일이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오게 된 배경에는 다양한 역사적 요인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처음 조선에 소개되었을 때는 17세기 중반으로, 당시 조선은 조선종교를 중심으로한 불교와 유교가 지배적인 종교 영토였습니다. 이 시기에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당시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천주교 신자들이 조선에 이르러 천주교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천주교는 조선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와 연관하여 발전해 나갔습니다. 당시 조선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불교와 유교를 중심으로한 종교적 통제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로, 많은 조선인들이 천주교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천주교는 당시 조선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도 기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 정치권은 천주교를 불신종으로 간주하면서 천주교를 탄압하였고, 이에 대한 천주교 신자들의 반발과 탄압은 조선의 종교적 갈등과 이념적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천주교는 조선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해 나갔으며, 이후 우리나라의 종교적 다양성과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 되는 시기는 임진왜란 당시 의 1593년 입니다. 그때 당시 일본의 천주교가 소개된 종교 개혁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우리 나라에 전해졌다고 전해집니다. 중국에 간 사신들이 그 곳에 와 있던 서양인 선교사로부터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얻어 오면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특이한 점은 일반적으로 천주교의 선교사들이 국내에 들어와 지식과 함께 천주교를 함께 전파하는 개념이 아니라 천주교를 접한 양반들은 처음에는 서양 학문의 한 부분으로 이를 연구하다가 국내에 자연스럽게 전파된것이 특징입니다.

    자료에 따르면 다음의 내용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역사는 자생성을 매우 강하게 보여주고 있어, 누구에 의해 전래되었다기보다는 학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탐구되었다고 평가된다. 이벽(李蘗), 권철신(權哲身), 정약종(丁若種), 이승훈(李承薰) 등과 같은 인사들이 천주교 전적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맛보았으며, 이를 친지와 후학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조선에서는 세계천주교 역사상 유래 없는 ‘신부 없는 전례’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