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나 동아시아에서는 비행기 발명이나 하늘을 날고자 실험을 한 위인이 없었나요?
하늘을 날고 싶은 열망은 정말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서양쪽에서 비행물체를 발명했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나 동아시아에서는 비행기 발명이나 하늘을 날고자 실험을 한 위인이 없었나요? 서양에서 발명이 끝난 열기구나 비행기를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의 가장 오래된 고전 중 하나인『산해경(山海經)』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飛車)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산해경』은 중국 고대의 지리서로 기원 전 2세기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재미있는 사실은『산해경』에 하늘을 나는 수레인 비거가 그림까지 곁들여 소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그림에 대해 약간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다. 수레 위에는 네모난 통이 있고, 그 안에 옷을 벗고 있는 도인이 깃발을 치켜들고 앉아있다. 깃발이 휘날리는 것으로 보아 제법 바람이 센 듯하고, 도인의 얼굴은 마치 사자가면을 쓴 것처럼 험상궂어 보인다. 두 개의 바퀴 모양은 마치 바람개비처럼 생겼고, 수레 양옆으로 난 날개는 새의 날개를 닮았다. 아득한 고대의 상상치고는 상당히 구체적인 이 그림을 보면 ‘비행’에 대한 인류의 염원이 얼마나 간절했는가가 십분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에도 임진왜란(1592년) 당시 진주성전투에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가 등장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여암전서(旅菴全書)』의 「책차제(策車制)」란 글을 보면, 임진왜란 때 김제 사람인 정평구(鄭平九)가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의 내용을 보면, ‘임진 연간에 영남의 읍성이 왜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성의 우두머리에게 비거의 법을 가르쳐, 이것으로 30리 밖으로 날아가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영남의 진주성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정평구는 평소의 재간을 이용하여 만든 비거를 타고 포위당한 성 안에 날아 들어가, 30리 성 밖까지 친지를 태우고 피난시켰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측 기록인『왜사기(倭史記)』에는 전라도 김제에 사는 정평구가 비거를 발명하여 1592년 10월 진주성전투에서 이를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규경(李圭景)[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비거변증설(飛車辨證說)」에는 ‘임진왜란 당시 영남의 어느 성이 왜군에게 포위당했을 때 그 성주(城主)와 평소 친분이 두텁던 어떤 사람이 나는 수레, 비거를 만들어서 성중(城中)으로 날아 들어가 성주를 태워 30리 밖에 이름으로써 인명을 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이규경 자신이 기록한 것으로 ‘강원도 원주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비거에 관한 책을 소장하고 있거니와 이 비거는 4명을 태울 수 있으며, 모양은 따오기(혹은 고니)와 같은 형으로서 배를 두드리면 바람이 일어서 공중에 떠올라 능히 백장(百丈)을 날 수 있되 양각풍(羊角風)이 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광풍이 불면 추락한다 하더라.’라는 구절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규경은 전주부인(全州府人) 김시양(金時讓)에게 들은 말도 곁들여 기록해 놓고 있다. 기록내용을 보면, ‘호서(湖西)[충청도] 노성(魯城) 지방에 사는 윤달규(尹達圭)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명재(明齋)의 후손이다. 이 사람이 정밀하고 교묘한 기구를 만드는 재간이 있어 비거를 창안하여 기록하여 두었다. 이러한 비거는 날개를 떨치고 먼지를 매면서 하늘로 올라가 뜰 안에서 산보하듯이 상하 사방을 여기저기 마음대로 거침없이 날아다니니 상쾌한 감은 비길 바 없다. 비거는 우선 수리개와 같이 만들고 거기에 날개를 붙이고 그 안에 틀을 설치하여 사람을 앉게 하였다. 물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헤엄치는 것처럼 또한 자벌레나비처럼 굽혔다 폈다 하는 것처럼 하여 바람을 내면서 날개가 저절로 떠올라가니 잠깐 동안에 천리를 날아다니는 기세를 발휘하여 십여 일의 시간을 단축하게 된다. 이것은 큰 붕새가 단숨에 삼천리를 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거는 일종의 사람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였다. 비거의 형태와 구조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비거의 비행 원리는 먼저 동체에 있는 가죽주머니의 아래쪽에 뚫려있는 구멍을 열어 압축 공기를 아래로 분출시키면 반작용과 함께 공기 방석작용으로 이륙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비거에 탄 4명이 날개를 움직이는 줄과 연결된 기계장치를 움직여 양쪽 날개를 상하로 움직임으로써 비거는 지면으로부터 떠오르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비거는 공중에서 약 100장(200m) 정도까지 비행할 수 있었으며, 상승기류라도 타면 기록에 있는 것처럼 30리라도 날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조선 ㅎ시대에도 하늘을 날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수레를 뜻하는 비거는 조선 선조 대의 발명가인 정평구(鄭平九)가 임진왜란 때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하는 물체입니다 비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이 19세기 초반 집필한 백과전서 '오주연문장전산고' 중 '비거변증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합니다. 이규경은 비거변증설에서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전제를 단 뒤 "비거는 새가 나는 원리를 본받아서 바람의 기운을 빌려 기계를 움직였으므로 충분히 상상해 볼 만하다"고 적었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아마도 행글라이더 정도의 초기 모델 정도라고 생각 되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