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가 무너진원인은 무엇인지?
안녕하세요 예전 어렸을때 뉴스에서 성수대교가 무너져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요 다리가 무너진원인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매크로픽과마르크셰르츠입니다.
성수대교 붕괴는 건설사의 부실시공과 허술한 감리, 그리고 허술한 관리때문입니다.
유지보수 관리만 잘되었더라도 충분히 막을수있는 사고였는데 안타깝죠
안녕하세요. 우람한사마귀345입니다.
다리가 무너지는 이유는 다양한 문제점으로부터 야기됩니다.
설계에서부터 공사 그리고 감리와 교량건설이후의 유지보수등과 같이 전반적인 부분에서
부실했기에 다리가 무너졌다고 보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강직한쏙독새7입니다.
성수대교 붕괴는 건설사의 부실공사와 감리담당 공무원의 부실감사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사건이며, 정부의 안전검사 미흡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교량 최초 시공사인 동아건설의 책임부분 -
유효단면적의 감소와 응력집중을 유발하게 한 용접시공의 결함과 제작오차 검사 미흡. 지어졌던 1970년대에는 파격적이었던 트러스 공법이 쓰였는데, 설계와 시공이 미흡했고 유지보수도 부실했고, MBC가 사고 현장의 수중촬영을 하였는데, 트러스의 강도만큼 중요한 볼트가 손으로 뺄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고 볼트의 구멍도 제멋대로 뚫려 있었습니다.
교량 보수 및 관리기관인 서울특별시의 책임 부분
-피로균열의 진전을 예방하지 못한 점검 및 유지관리 미비
-급속도로 증가하는 차량 통행량에 대비하지 못하였음, 하루 통행량을 8만 대 정도로 설계했지만 실제 하루 통행량은 2배가 넘는 16만 대 이상이었다. 게다가 붕괴 전해인 1993년에 동부간선도로의 강북구 구간(성수~상계) 구간이 개통되면서 교통량이 폭증했는데, 당시 서울시는 하중제한만 낮추는 형태로 대처하였고, 그나마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으며, 특히 당시에는 청담대교가 건설되기 전인 데다 성수대교 북단은 당시 일차 개통된 강변북로와 연결되지 않고 용비교와 연결되는 (현재의) 뚝섬로에 설치되어, 근교 교량 분산이 쉽지 않아 경부간선도로 입구 분기점에서 가장 가까운 언주로와 성수대교로 교통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당시 성수대교는 왕복 4차로에 불과했기에 상습적인 교통체증이 심하여 붕괴가 가속화되었다.
건설업계의 역량 부족
-성수대교는 경간 중앙부에 (문의 경첩과 같은) 힌지를 넣는 게르버보 형식으로 건설되었는데, 구조계산이 쉬워 당시에 많이 사용했던 구조형식입니다.
구조계산에 필요한 수치 중 '부정정차수'라는 것이 있는데 부정정차수가 높아질수록 구조해석을 하는 데 필요한 계산량이 껑충껑충 뛰어올라서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발달해서 구조해석이 쉽지만 그러나 당시에는 조금만 부정정차수가 높으면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더라도 해석에 걸리는 시간은 갑절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구조계에 힌지를 넣으면 부정정차수를 한 단계 낮출 수 있고 게르보 형식은 부정정차수가 0인 정정구조물입니다.
정정구조물은 구조적으로는 안전하고 구조계산 방식이 간단해서 펜과 계산기만으로도 빠르게 계산할 수 있는데 반대로 부재(Member)가 하나라도 파괴되면 구조물 전체가 붕괴되는 위험을 내포하여 직관적으로도 교량 중간에 힌지를 넣으면 위험함을 알 수 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성수대교입니다.안녕하세요. 숭늉한사발입니다.
건설사의 능력부족, 건설사의 부실시공, 교량보수 및 관리 감독하는 주체의 관리 미비등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엇 결국 무너진 것이죠.
안녕하세요. 산뜻한코끼리228입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경에 발생한 사고로, 다리의 상부 트러스가 붕괴하면서 차량 6대가 한강으로 추락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의 원인은 부실시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리를 건설할 때, 이음새 용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볼트와 너트도 규정치에 미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설계 하중을 초과하는 차량이 빈번하게 통행하면서 피로 누적으로 인해 균열이 발생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