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왜 이맹종에게 자진을 명했나요?
이방원은 자신의 형이 역모를 일으켰지만 끝까지 살려주었는데 그의 아들인 세종은 왜 이방원이 죽곡 거의 바로 이방간의 아들인 이맹종에게 자진을 명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23년부터 이맹종의 탄핵과 사형을 주장하는 의정부와 육조의 상소로 세종은 그에게 자진을 명했습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으로, 형조 도관이 아뢰었다. 이방간의 아들 이맹종은 반역죄를 범하여, 일국 신민의 불공대천 원수로 머리를 보전하여 오늘에 이른것만으로도 이미 다행입니다. 하지만 맹종의 노비는 128명이나 되오니 이를 관부에 이속하게 하옵소서
이에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1권 세종 1418년 10월 6일 임오 5번째 기사 입니다.
또한 대신들의 압박은 더해가는데,
사간원에서 상소를 올렸다.
원망은 갚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군부의 원수는 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방간 부자가 군사를 일으켜 대궐로 향하여 상왕을 도모하려고 하다가 군사가 패하여 달아났으니 그 당시에 충신, 의사가 모두 방간 부자를 목베어 여러 사람의 마음을 통쾌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상왕 전하는 천성이 우애하시어 차마 죽이지는 아니하시고 그 생명을 보전하게 하신 것이 지금 19년이나 됐습니다.
전하께서 왕위를 계승하셨으니, 진실로 마땅히 종일을 기다릴 필요 없이 그 원수를 갚아야 될 것인데, 대간 이 소를 올려 번갈아 청한 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됐으되, 전하께서 상왕의 마음을 어기기를 어렵게 여기시고 만세의 의리는 돌아보지 않으시어 그대로 두고 결단하지 않으시니 온 나라의 신민이 속을 썩이고 이를 갈지 않는 이가 없사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형벌을 밝게 잡으시어 신민의 분함을 통쾌하게 풀어주소서
사헌부에서 또 상소를 올렸다.
전일에 전하의 교지를 삼가 듣삽고, 또 상왕의 명령을 들었사오나, 감히 두 전하의 뜻을 어기고 방간과 맹종의 죄에 관해서 여러번 글을 올려 임금의 들으심을 괴롭혔사오니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자세히 모르겠지만 방간 부자가 군사를 일으킨 일이 누구를 해치고자 한 것이겠습니까. 설령 그 난적들의 계획이 이루어졌다면 조선의 종사가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일에 아뢴 바와 같이 지성으로 슬퍼하면서 대의를 진술하여 상왕의 마음을 돌이켜서 군부의 원수로 하여금 같이 한 하늘 밑에서 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에 임금이 명령하여 방간 부자의 노비는 집안에서 심부름하는 것을 제하고는 모두 도관에 소속시켰다.
세종실록 2권 , 세종 1418년 11월 23일 기사 3번째 기사 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상소가 올라왔고, 그동안 아버지인 태종의 뜻을 따른 세종대왕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맹종을 제거할 명분도 충분했다 여겨 결국 자신의 생각을 밝히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맹종은 회안대군 이방간의 아들이었는데, '2차 왕자의 난'을 앞두고 과감하게 정안대군 이방원을 해하려고 했던 인물 입니다. 1400년에 있었던 2차 왕자의 난이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면서 아버지인 회안대군 이방간과 함께 황해도 토산으로 유배되는 신세가 되었는데 세종이 왕위에 오른지 5년만인 1423년 7월 11일에 그는 사사되었는데, 이맹종은 세종에게 있어서 사촌 형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을 죽이려던 인물이기에 딱히 태종의 유언이나 유지가 없었음에도 세종은 장차 화근의 씨앗이 될 것이 우려 되서인지 의금부 사람들을 보내어 이맹종에게 자결을 명했다고 합니다. 세종 대왕의 냉철한 면도 보이는 사건 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