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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4.04

형사취수제는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가요?

형제가 죽으면 그 부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형사취수제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떤 이유때문에 생긴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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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4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남자의 경우 형이 죽은 뒤 동생이 형을 대신해 형수와 부부생활을 계속하는 혼인풍습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 부여와 고구려에 이 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스라엘 율법에 이 제도가 명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형사취수혼(兄死娶嫂婚)이라고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高句麗)의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밖에 부여(夫餘)·흉노(匈奴)·선비(鮮卑) 등에서도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근·현대까지 형사취수혼을 유지한 사회로는 시베리아의 척치(Chukchee)족이 유명한데, 인류학자들은 대체로 죽은 사람의 부인과 남은 자녀를 돌보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한다.

    다만, 구체적인 배경과 변천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사회진화론자(社會進化論者)들은 형사취수제를 사회발전단계의 한가지 현상으로 파악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적장자상속(嫡長子相續)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형제상속(兄弟相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전파주의(傳播主義) 입장에 선 학자들은 형사취수제를 문화권(文化圈)의 범위를 알려주는 지표로 여긴다. 즉, 형사취수제는 부여·고구려·흉노·선비 등 중국의 동북방에 거주하였던 북방민족의 독특한 혼인풍습이라는 것이다. 흉노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죽은 뒤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과 생모(生母)를 제외한 나머지 첩들을 모두 자기의 여자로 삼았다고 하는데, 형태와 모양만 다를 뿐 여자를 재산으로 인식하고 상속 범주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같은 문화라고 주장한다. 기능주의(機能主義) 입장에 선 학자들은 형사취수혼을 목축사회에서 자기 집단의 인적·물적 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한다. 목축 사회의 경우, 남편이 죽은 뒤 부인이 자녀들과 재산을 이끌고 자기의 친정집단으로 돌아가면 남편 집단은 대단한 손실을 입게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새 남편을 제공함으로써 집단의 재산을 보호하고 안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한편, 고구려의 형사취수혼은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소개되어 있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국천왕(故國川王)이 죽은 뒤 왕비인 우씨(于氏)가 고국천왕의 아래동생인 발기(發岐)를 제쳐두고 막냇동생인 연우(延優)와 혼인함으로써 연우(山上王)가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 우씨가 죽은 뒤 고국천왕이 아닌 산상왕(197∼227)의 무덤 옆자리에 묻히자 고국천왕이 무당의 꿈에 나타나 '우씨와 싸웠다'고 말했다는 전설도 실려 있는데, 3세기 무렵 고구려에서 형사취수혼과 같은 혼인 관습에 변화가 생긴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이야기로 보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형사취수제 [Levirate, 兄死娶嫂制]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는 형이 결혼하여 자식이 없이 죽을 경우

    동생이 형의 아내를 이어서 결혼생활을 통해 자식을 낳도록 하여

    형의 대를 잇도록 하는 혼인제도를 말합니다.

    이런 제도는 씨족 사회 특히 유목민족에서는 오랫동안 시행되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형제가 죽고 그 재산이 전부 외가로 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풍습을 가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유목민족에게서 있던 제도로 유목민족은

    전투가 많았고 당시 남성의 노동력이 중요하던

    시기에 가족의 생존을 위해 시행하던 제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형사취수제는 고대 사회에서 발생한 풍습으로, 형제나 친척 등 가까운 관계의 남성이 죽으면 그의 아내가 형제나 친척 중 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풍습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사취수제가 생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죽은 경우 가족의 지위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고도 합니다. 예를 들어, 형제나 아들이 죽은 경우, 그 아내가 다른 가족의 남성과 결혼하게 되면 가족의 지위와 재산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풍습은 가족 간의 유대를 유지하고, 가족의 존재를 보장하는 역할도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풍습이 타락과 부조리로 여겨집니다. 형사취수제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인식되고 있으며, 법률적으로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형사취수제’라는 독특한 결혼 풍습.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을 대신해 형의 아내와 부부 생활을 계속하는 혼인 풍습 입니다.


    당시에는 이웃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자주 일어나면서 전쟁에서 죽는 남자들이 많아 그래서 죽은 형의 부인이 혼자살아가기 힘든경우나 또는 재산과 자식이 집안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막기 위해 나타난 풍습인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런데 동생에 관해서는 그런 내용이 기록에 없어 알수가 없지만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형수와 같은 경우이기 때문에 아마도 동생이 죽으면 제수인 동생의 부인도 형이 데리고 살았을것 입니다.그렇게 형사취수제와 제사 취수제가 공존했을것 입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하신 관습은 고대 히브리, 힌두교를 포함하여 역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서 관찰되었습니다. 이 관행은 종종 사망한 남편의 가족 내에서 미망인과 그녀의 자녀를 돌보고 보호하는 방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역전 결혼이 죽은 남편의 혈통이 계속되도록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은 과부의 자율성과 동의를 잠재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많은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시행되지 않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에는 형사취수제 라는 결혼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을 대신해 형의 아내와 부부생활을 계속하는 혼인풍습입니다.

    당시 이웃나라 사이에 전쟁이 자주 일어나면서 전쟁에서 죽는 남자들이 많아 죽은 남자의 재산과 자식이 집안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타난 풍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