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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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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라는 화가가 지향했던 작품의 방향성은 무엇이었나요?

예전 대학교 교양시간에 마티스라는 화가를 잠깐 알아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작품들이 매우 강렬해서 인상이 깊었는데요.

실제로 이 화가가 지향했던 작품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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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7년 소시에테 나시오날 전람회에 출품한 《독서하는 여인》을 국가가 매입하게 되자 이 전람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 후 피사로 등과 알게 되어 인상파에 접근하였고, 또 보나르나 뷔야르 등의 영향도 받았다. 모로가 죽은 후에는 아카데미 카리에르에 다니며, 드랭과 알게 되었다. 이 무렵 그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웠다.

    한편 예술적으로는 드랭을 통하여 블라맹크를 알게 되고, 1900년 이후에는 세잔풍(風)을 도입하여 극도로 구성적인 포름과 어두운 색조로 전향하였으나, 1904년 시냐크 ·크로스와 함께 생트로페에 체재하게 됨으로써 신인상파풍을 짙게 받아들였다. 이 새로운 교우관계가 이듬해에 시작된 야수파(포비슴) 운동의 강렬한 색채의 폭발로 나타나게 되었다.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시작한 이 운동은 20세기 회화의 일대 혁명이며, 원색의 대담한 병렬(竝列)을 강조하여 강렬한 개성적 표현을 기도하였다.

    1908년경에는 강한 색채효과를 억제하는 한편, 새로이 전개된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입체주의(큐비즘)의 방향으로 눈을 돌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10년의 뮌헨 ‘근동미술전’의 인상, 1911∼1913년 두 번에 걸친 모로코 여행으로 왕년의 포브 시대와 다른 장식적인 현란한 색채를 사용하여 특히 아라베스크나 꽃무늬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구성이나 순수색의 병치(竝置)로 독특한 작풍을 창조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목련꽃을 든 오달리스크》가 있다.

    그 후 그의 예술은 차차 성숙해져 보색관계를 교묘히 살린 청결한 색면효과 속에 색의 순도를 높여 1923년경부터 1930년대에 걸쳐 확고한 마티스 예술을 구축함으로써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의 위대한 지침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9년 남(南)프랑스 니스의 방스성당의 건축 ·장식 일체를 맡아 여기에 모든 기법과 재료를 동원, 그의 예술의 집대성을 이룩하고 니스에서 죽었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세계 각국에 존재하고, 20세기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