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유학호는 누구나 기재할 수 있었나요?

조선초기에 양반의 수가 1%정도였고 후기에 가면 70%정도의 수치를 보였다고하지만 이는 단순히 행정기관에 유학호로 등재된 사람의 수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실제 신분과 차이가 있었다고하는데 당시 호적에 직역을 유학호라고 누구나 등재해도 문제가 없었나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은혜로운들소295입니다.

      조선 시대에 행정기관에서 호적을 수정 관리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호방을 거쳐 고을 수령의 재가를 받아서 호적을 수정하는데
      유학호로 변경하면 세금 병역 등의 의무가 변경되기 때문에
      매우 엄격하게 통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