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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하늘소177
힘찬하늘소177

프랑스의 군인인 니콜라 장드듀 술트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절의 프랑스의 원수였던 니콜라 장드듀 술트는 프랑스 역사상 마지막 대원수였다고 하는데요.


니콜라 장드듀 술트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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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769년 3월 29일 프랑스 생타망라바스티드에서 왕실 공증인 출신의 아버지 장 술트와 그르니에 가문 출신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장드디외 술트는 변호사가 되고자 했으나 1785년 4월 16일 술트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 금전적으로 어머니를 돕기 위해 16살의 아니로 왕실 보명연대 병졸로 입대 합니다.

      술트는 1794년 6월 플뢰루스 전투에서 공을 세워 프랑수아 조제프 르페브르의 추천으로 장군이 되어 1799년 3월 슈토카흐 전투에서 르페브르를 대신해 싸우기도 했으며, 1800~1802년 나폴레옹 시대 때 나폴리 왕국 남부를 맡았습니다.

      1805~1806년 울름 전투, 아우스터리츠 전투, 예나- 아우어슈테트 전투 등에서 승리해 명성이 높아지나 1807년 폴란드 아일라우 전투와 하일스베르크 전투에서 별 다른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술트는 달마티 공작작위를 받아 스페인에서 반도 전쟁을 치러 영국군 사령관 아서 웰즐리에게 패, 나폴레옹 1세는 1813년 3월 술트에게 대육군 4군단의 지휘권을 주어 5월 20일부터 21일까지 바우첸 전투에서 4군단을 지휘하게 됩니다.

      1814년 4월 10일 술트는 툴루즈 전투를 개시, 쉬셰 장군이 자신의 군대에 합류하는 것을 설득하는데 실패, 결국 웰링턴 경에 이기지 못해 톨루즈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게 되며 그 뒤 1814년 제 1차 왕정복고 때 왕당파로 자처하나 1815년 나폴레옹 백일천하때 다시 보나파르트 편으로 돌아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참모장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루시의 별동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전령을 보내라는 나폴레옹이 명했을 때 전령을 1명만 보내는 등 처음 맡아보는 참모장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다 워털루 전투 패배에 일조한 셈이 됩니다.

      결국 제 2차 왕정복고의 개막과 더불어 추방당했다가 1819년 다시 왕의 부름을 받으며 루이 필리프 통치때 3번이나 내각을 이끌었고 국무원 의장과 육군장관을 줄곧 역임합니다.

      1840년대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1848년 루이 필리프가 왕좌에서 쫓겨나자 자신은 공화주의자라 선언, 그의 회고록이 1854년 3권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