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인도는 오랫동안 중국에게 판다대여를 요청했는데 중국은 그때마다 거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은 판다의 국외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며 현존하는 거의 모든 해외의 판다는 중국정부에 의해서 소유권을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동물종 전체에 대해 그 소유권이 특정 국가에 귀속되어 있는 사례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판다는 중국 중남부에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중국 외부에서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이 계약의 형태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판다는 멸종 위기종이며 중국의 자연 파괴가 현대만큼 심각해지기 전인 1950년대 이전부터 개체 수가 적은 동물이었습니다.중국의 급격한 산업화 후 판다의 개체수는 더욱 감소하여 1970년대에는 1000여 마리까지 줄어들었지만 연구 및 보호사업의 성공으로 현재는 2천 마리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판다 임대료의 상당 부분은 판다 보호 및 판다 번식과 관리의 노하우를 쌓는데 드리는 비용으로 충당이 되며 2021년 기준으로 약 50여 마리의 판다가 해외 임대되고 있는데 두 당 임대료가 100만 불이라고 쳐도 연 5천만 불 정도입니다. 인도는 대여 신청을 여러 번 했으나 인도 동물원의 관리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 및 인도와의 좋지 않은 사이 때문에 여러 번 반려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도 2010년 존키 총리가 판다 도입을 중국 정부의 협상을 통해 시도해 보려고 했으나 결국은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4.04.27
0
0
이성계가 최영장군을 죽인건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 예술 전문가입니다.부대를 이끌고 북진하던 이성계는 위화도 근처까지 진군하였으나 비가 쏟아져 길이 막히게 되고 개경의 우왕과 최영이 회군해 달라는 요청을 끝까지 거부하자 함께 출전하였던 조민수와 함께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구데타를 일으키고 말았지요 이 소식을 접한 최영은 도성에 몇 없는 병사를 추려서 반격에 나섰는데 그러나 마지막 한 명까지 닥닥 긁어 모두 요동 공략군으로 출진시킨 상황이더라 개경엔 병사가 변변치 않았고 주어진 시간도 너무 짧아서 이성계가 이끌던 원정군인 반란군의 회군 속도가 어마어마하여 최영과 우왕이 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격문을 지속적으로 보내며 회유를 시도하는 편 어떻게든 병력을 확보해 보려고 애를 썼는데 백전노장 최영은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민수의 부대를 패퇴시키는 등 최후의 활약을 펼쳤으나 얼마 되지 않는 병력으로 수만 명의 군세를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죠 그럼에도 최형은 끝까지 저항했고 이유는 어떻게든 버티며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퍼지면 왜구를 막느라 각지에 남아 있던 방어 병력들이 개경으로 직결할 테고 그러면 이후에 어쨌든 반란군인 이성계로서는 불리해 지지요 이성계가 강행군을 하며 빠르게 회군한 것도 이런 점을 조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머리 수에서 밀려 중과부족으로 패하며 반군이 개경에 몰리게 되어 최영은 체포되고 말지요 그 후 무장 이성계에 의해 고봉현의 유배되었고 그 뒤 다시 합포로 옮겨졌으며 창왕 즉위 직후 개경으로 압송되어 또 한번 순군옥에서 참혹한 신문을 받고 향년 73세의 나이에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4.04.27
0
0
국내에서 체류할수 있는 정치적난민이 있다고 하던데 이 정치적난민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정치적 위협을 받아 생명의 위험에 처할 두려움으로 인해 국경을 넘어 피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법적인 개념으로서 난민은 국제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강제소환 금지 원칙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또한 난민들은 1951년 UN 난민 협약에 따라 교육 고용 의료 이동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는 2080만 명의 난민이 있다고 말합니다.국내 실향민은 난민과 비슷한 이유로 피난을 선택했지만 국경을 넘지 않고 자국 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국내 실향민은 국제법상 난민과 같은 권리를 부여받지는 못하기 때문에 보호에 가장 취약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그들의 국가 내에서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는 5,080만 명의 국내 실향민이 있다고 합니다.우리는 난민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지만 오늘 세계는 훨씬 더 많은 국내 실향민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비호신청자는 망명 신청자로도 불리며 국경을 넘어 피난하여 국제적인 보호를 요구하지만 난민에 대한 자격이 확실히 결정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모든 비호 신청자가 난민주의를 부여받는 것은 아니며 신청국의 평가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난민지위를 얻지 못하는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는 440만 명의 비호 신청자가 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4.04.27
0
0
국가에 납부하는것중 과태료와 벌금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벌금은 재산형에 속하는 형사처벌이며 전과 기록에 남고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위치하여 작업에 복무해야 합니다 과태료는 도로 위에 있는 무인 카메라 또는 단속 장비를 통해 단속에 적발되면 부과되는 것입니다 벌금은 법을 어긴 경우에 적용되는 형벌이며 법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 규범인데요 법을 어기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법을 어기면 감옥에 가는 징역이라는 벌을 받을 수도 있고 잘못해서에 대해 일정 금액을내는 긍정적인 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요 벌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금전적인 형벌이기 때문에 벌금형은 과태료나 과징금과는 다르게 전과기록이 남게 됩니다 또 벌금과 비슷하게 법을 어겼을 경우 돈을 얘기하는 재산 형에는 벌금 말고도 과료와 몰수가 있는데요 과료는 주로 경범죄처럼 과중하지 않은 범죄에 적용되며 2,000원부터 5만 원까지로 그 금액이 적고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과태료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위반에 대한 형벌로 차이가 있습니다 몰수는 재산권을 일방적으로 국가가 가져오는 것으로 몰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일부 또는 전체를 몰수할 수 있습니다 과태료 역시 법을 어기는 경우 내려지는 금전적인 벌입니다 하지만 벌금과는 다르게 형벌적인 성격을 띠지 않기 때문에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차이는 있는데요 과태료는 일반적으로 위반 행위에 대해서 행정적으로 제재하고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량을 운전하시는 분들께서는 과태료와 비슷하게 범칙금을 내라는 통보를 받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는 주로 모두 경범죄나 경미한 도로 교통법 위반 등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제재로 차이점은 운전자를 특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구분이 되며 무인 단속기 등에 불법 정차나 속도위반이 적발되면 운전자가 누군지 정확히 인적사항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량 소유주에게 위반에 대한 과태료를 통지하는데 위반 행위를 하여 직접 경찰에게 붙잡 혀 인적사항 조회가 들어가면 위반자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운전자에게 직접 범칙금이 부과됩니다 범칙금은 개인 기록에 남고 벌점도 쌓일 수 있으며이는 보험료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경우는 과태료가 범칙금과 혼동될 만한 경우를 말씀드린 것이고 과태료는 경미한 범죄사항 말고도 근로 기준법 위반 같은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에도 수백 수천만원 단위로 부과되기도 합니다
학문 /
역사
24.04.27
0
0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이성계는 무엇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359년의 1차 침공은 모거경이 4만여 명의 병력으로 침공했다가 70여 일만의 대부분의 영역을 잃은 채 압록강을 건너 패퇴하는 것으로 끝이 났고 2차 침공은 반성 사류 관선생 주원수가 이끄는 20만여 명을 이끌고 침공하여 개경을 함락시키는 등 위력을 발휘했으나 안우 김득배 이방실 등의 활약으로 3개월 만에 10만여명이 죽고 10만여 명은 다시 압록강을 건너 도주하는 것으로 끝났으며 이 과정 중에 고려에서는 김용의 난이 일어나 공민왕이 암살당할 뻔한 위기도 겪기도 했으며 이성계 등은 신흥무인 세력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당시 이성계는 장군이 아니었기에 정세운과 안우와 이방실 김득배 수하의 장수로 함께 전쟁에 참여하여 전쟁후에 공신책봉을 받아 무군들의 힘이 기성세력인 권문세족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문 /
역사
24.04.23
0
0
사주가 궁금해요 대충 뜻이라도 알려주실분?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주팔자의 뜻부터 알아보자면 사주는네 개의 기둥을 의미합니다. 네 개의 기둥이란 연주 월주 일주 시주라고 해서 태어난 연월일시를 나타내는 것이죠. 그리고 팔자는 여덟개의 글자를 의미하는데 사주팔자는네 개의 기둥에 써 놓은 여덟개의 글자라고 합니다 이렇게 세워진 사주가 그 사람의 운명을 함축한다고 보는 것을 명리라 하고 사주의 구조를 분석 종합하여 그 사람의 길흉화복을 추리하는 것을 추명이라고 하지요 추명에는 사람의 선천적 숙명을 판단하는 일과 다른 술법의 원용하여 흉화를 길복으로 바꾸는 두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4.04.23
0
0
미식축구의 유래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식 축구는 영국의 럭비가 미국에서 변형된 형태의 단체 구기 스포츠입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100여 년간 가까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스포츠였던 야구를 밀어내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곧 미국의 국기가 되었지요 미식 축구는 국위 종목 중 가장 몸싸움이 심한 편이며 그만큼 프로나 아마추어 선수가 되려면 건장하고 강한 체력이 필수라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보호 장구를 착용한다 해도 상대와 몸대 몸으로 강하게 충돌하기 때문에 심각한 부상의 위험도 많아 부상으로 인해 그만두는 선수가 많으며 프로 선수들도 선수 수명이 타 종목에 비해 상당히 짧습니다. 또한 상대방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순발력도 중요하며 지능과 조직력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을 합니다.이 때문에 미식축구 선수 중에는 학업 능력이 우수한 사람들도 제법 많고 심지어는 아이비리그 출신들도 중간중간 있습니다.미식축구는 거의 손을 사용해 목표 지점까지 공을 가져가 득점하는 풋볼 계열 스포츠로 한 팀이 11명으로 되어 있는 점은 축구와 같지만 축구와는 달리 선수들이 전문화된 포지션 하나만을 맡고 있지요
학문 /
역사
24.04.23
0
0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실제 지휘자의 지휘봉을 보고 연주하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물론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관객들은 잘 알수가 없지만 지휘자의 지휘봉이나 손의 움직임에 따라 음악을 연주합니다. 만약 지휘자가 없다면 음악이 엉망이 되어 듣기가 괴로울것입니다.때문에 세계적인 지휘자가 보수를 많이 받고 전 세계에 초청되어 지휘봉을 흔드는것입니다
학문 /
음악
24.04.23
0
0
야스쿠니신사는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야스쿠니 신사 또는 조슈 신사는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황궁 북쪽에 있는 신사로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영령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총면적 93,356 제곱미터로 일본에 있는 신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영미권의 언론에서는 전쟁 신사란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869년(메이지 2년) 침략 앞잡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도쿄쇼콘자가 그 전신인데 지금의 이름인 야스쿠니는 나라를 안정케 한다는 뜻으로 '좌씨춘추'의 '오이정국야'에서 따왔고 1879년 메이지 천황에 의해 현재 이름으로 개명이 됐지요.벚꽃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고 신사에는 2,466,532명의 남성,여성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이름,본관,생일,죽은 장소들을 적어 봉안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다양한 애완동물까지도 함께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이들 중 1,048명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특히 이들 중 14명이 A급 전범이기에 일본의 옛 식민지 국가들과 갈등을 겪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신사 본전에는 일본을 위해 싸우거나 일하다가 전사,사망한 사람들을 합사하여 봉안해 놓았는데 이들 중 강제적으로 일본에 끌려갔던 한국인 대만인들도 합사되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학문 /
역사
24.04.23
0
0
옛날에 왕이 탄산목욕을 즐겨한 왕이 있다 들었는데요 무슨 왕인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때는 기원전 218년 고대 도시 카르타고를 대표하는 장군이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한니발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장군, 아직 로마에 도착하려면 갈 길이 먼데 잠시 병사들 목을 축이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의 군대는 진군 중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베르게즈 지방의 천연탄산수 온천장인 르부양의 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기원전 58년, 역사상 가장 목욕하기를 즐긴 로마인들은 이것을 차지하지 마자 온천으로 만들었고 당시 로마의 줄리어 시저를 비롯한 위정자들은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대중목욕탕을 세웠지요. 베르게즈의 탄산수가 본격적으로 상품화 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였고 이전에는 병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병 치유를 기대를 하는 인근 주민들이 목욕도 하고 탄산수를 마셨어요. 지역의 유지였던 알본세 가르시에 가르니에는 페리에 수원지뿐만 아니라 부근의 토지를 매입하여 1863년 나폴레옹 3세로부터 이 샘을 상품화할 권리를 얻었고 그는 베르게즈 지역을 온천지로 개발했습니다. 온천욕을 즐기는 관광객을 위해 호텔을 짓고 탄산수병에 담아 파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1869년 발생한 화재로 인해 사업의 큰 타격을 입었고 회사는 부도가 났지만 1894년 탄산수와 이를 이용한 치료법에 관심이 있던 루이 페리에 박사는 베르게즈 건강 음료 미네랄 워터 회사를 설립 베르게즈의 레부양을 인수받았고 1898년 페리에 박사는 탄산수의 속성을 연구하고 병입하는 기술을 완성하는데 몰두하면서 병에 미네랄과 탄산의 균형을 맞추는 공정 과정은 물론 물과 천연탄산가스를 분리하여 채취하는 방식도 개발했지요 즉 페리에라는 탄산수가 개발되었으며 줄리어스 씨저가 탄산수 목욕을 즐겨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4.04.23
0
0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