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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인조반정(仁祖反正)은 1623년 4월 11일(음력 3월 12일) 김류, 이귀, 신경진, 이서, 최명길 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을 몰아내고 능양군 이종을 옹립한 사건을 말한다. 반정이 일어난 해의 이름을 따 계해반정(癸亥反正) 또는 계해정사(癸亥靖社)라고도 한다.-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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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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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농공상은 언제부터 정해진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주자학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서 선비인 사(士)를 가장 존귀하게 여기고 農(농부), 工(공장), 商(상인) 순으로 존비(尊卑)가 결정된다. 조선시대 주자학과 함께 들어온 이 사농공상은 직업으로 존비귀천을 구분했던 조선시대 신분제도이자 윤리체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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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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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좋아하던 조선시대에도 책방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조선 말기 이전까지 한반도에 서점이나 도서관과 비슷한 시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교라는 학문을 국시(國是)로 삼아 신진사대부 계층이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갖춘 일반 백성들을 통치하던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는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서적은 국가 주도 하에 인쇄한 것을 관청 및 교육기관 등을 통해서 베포되었거나, "책쾌"라고 불리던 책장수(서적 도매상)가 그때그때 필요한 서적들을 수급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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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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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문화는 중국이 시초 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중국의 차 역사는 기원전 270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초에 중독된 신농(神農)이 찻잎을 먹고 해독됐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차는 한나라 때부터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나라 때 민간에까지 널리 전파됐다.한국의 차 문화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며 선비 중심으로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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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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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기원은 언제부터 시작된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뮤지컬은 19세기 영국에서 탄생하였는데, 그 근원에는 유럽의 대중연극, 오페라·오페레타·발라드 오페라 등이 있다. 1728년에 이와 형식이 유사한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가 런던에서 상연되었는데, G.에드워드가 제작한 《거리에서》를 1892년에 초연된 첫 뮤지컬로 본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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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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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말과 정통은 다른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어느 사회이든 갈등의 중심에는 정통(orthodoxy)과 전통(tradition)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다. 정통은 시대와 문화가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올바른 진리와 가지이다.전통은 때로는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오랜 시간 동안 존속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데 정통과 전통이 서로 충돌해 싸움이 일어날 때 사회는 갈등을 겪게 된다.-출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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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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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와 마네는 어떤관계였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모네와 마네의 공통점은 전통적인 미술을 거부한 점이다. 두 사람이 활동하던 시대에 화가로 성공하려면 파리 ‘살롱전’에서 인정받아야 했다. 하지만 인정받던 화풍은 정형화한 틀에 맞추어 이상적인 모습으로 꾸미는 것이었다. 꾸민다는 것은 마치 디지털카메라로 색감과 신체비율 등 원하는 모습으로 꾸미는 것을 상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런 흐름에 맞서 모네와 마네는 ‘보이는 대로’ 그리는 반 아카데미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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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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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성당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약현성당>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개항기 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벽돌조의 고딕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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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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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의 삼천궁녀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의자왕과 후궁들이 낙화암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후궁들이 뛰어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의자왕이 뛰어내린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궁녀’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니, 여기에 사용된 ‘궁녀’란 표현은 넓은 의미의 궁녀(고대에는 궁에 사는 모든 여성)였다. 이처럼 <삼국유사>에 따르면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여인들은 삼천 명이 아니라 불과 몇 명에 불과했다.-출처: 문화유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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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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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수영역사상 최초에 수영선수는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1962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아시아경기에서 진장림(陳章琳)이 100m 평영에서 3위, 200m 평영에서 4위에 입상하였다. 1970년 방콕에서 개최된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조오련(趙五連)이 400m 자유형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하는 한편, 1,500m 자유형에서도 우승함으로써 국제대회 첫 금메달리스트이자 2관왕이 되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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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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