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다락방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다락방의 위치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성서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다락방의 원 건물은 유대인의 회당이었고, 나중에 초대 교회로 사용되어졌다고 합니다. 국내에는 다락방 하면 뭔가 과거의 추억이 잠들어 있는 따뜻한 공간이란 인식이 남아있지만 과거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를 드렸던 대피의 장소란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8.30
0
0
프로씨름을 왜 민속씨름으로 부르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확한 호칭에 대한 설명이 대한체육회나 한국씨름협회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씨름아카이브센터에 들어가보면 씨름을 두가지로 구분해 놓았는데 여기서 유추 해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씨름을 민속씨름 / 전문체육씨름 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민속씨름이 프로경기이고 그외 아마추어 경기들을 전문체육씨름으로 구분한 것으로 보아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을 위해 민속씨름이라 명칭한걸로 예상됩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8.30
0
0
활이라는 무기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처음엔 돌을 손으로 던져서 잡았을 겁니다. 그리고 좀 더 멀리 던지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이 고안되었겠죠, 그중에 돌팔매 질도 있을 것이고 새총 같은 형태도 나왔을것 입니다. 그런 와중에 사정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리게 되는 활이 발명되게 되었을 걸로 예상됩니다.한국에서의 활의 역사는 기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선사시대에 만들어집니다. 사냥과 전쟁을 위하여 활을 만들었으며 화살 자체는 사라졌으나 돌촉·쇠촉 등 화살촉을 남김으로써 당시의 활의 모양을 유추할수 있습니다. 역사시대로 들어와 활은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지며 단궁과 장궁, 복합궁으로 나뉩니다. 한국의 각궁(角弓)은 단궁이자 복합궁으로 성능이 뛰어나고 사정거리가 멉니다. 고조선에서 시작된 단궁의 맥은 삼국시대를 거쳐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8.30
0
0
상처난곳에 과산화수소수를 바르면 부글부글 거리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과산화 수소는 혈액 및 세포속에 존재하는 카탈라아제 라는 효소에 의해 급속한 분해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때 기포가 발생하게 됩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화학
23.08.30
0
0
조선 왕조에서 화재 예방 및 안전 관리에 대한 정책이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는 오늘날 소방서처럼 화재 예방과 진화 등 소방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관청이 따로 있었습니다. 세종 때인 1426년에 설치한 금화도감(禁火都監)입니다. 금화도감은 시전 점포에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 담을 쌓고, 도성 곳곳에 우물을 파서 물을 저장해두며 화재에 대비했습니다. 금화도감은 1481년(성종 12)에 수성금화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멸화군(滅火軍)을 따로 선발했습니다. 멸화군은 24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불이 나면 즉시 화재 현장으로 출동하는 '조선의 소방관'이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8.30
0
0
우리나라에서 안경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안경은 조선시대 중기인 17세기경에 우리의 손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는데 조선시대 후기까지는 극히 소량으로 생산되어 제한된 일부 층에게만 보급되었습니다. 안경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아주 희박하였으며, 신분이 높거나 나이가 많이 든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안경이 나름대로 자리를 찾고 발전을 이룩한 시기는 영조(英祖) 때부터로, 이후 세간에 널리 퍼져 정조(正祖) 때에는 임금조차 노년에 안경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현재의 안경과 같이 귀에 다리부의 끝부분을 걸릴 수 있도록 개발된 시기는 1850년 이후입니다. 안경테의 재료로 금속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이며, 이후에는 귀갑테가 사용되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8.30
0
0
언제부터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세균은 현미경을 발명한 네덜란드의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이 1676년 5월 26일에 처음으로 관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곰팡이, 기생충, 머리카락 등을 관찰했으며, 정액 속 정자도 최초로 관측했다고 합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생물·생명
23.08.30
0
0
피카소 그림은 왜 값이 높은 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해설하고 있는 김찬우 라고 합니다.피카소가 유명한 이유는 회화제작의 기본문법이라고 할수 있는 원근법을 최초로 파괴했기 때문 입니다. 피카소의 유명작품이라고 하면 여러가지가 있지만 보통 구도가 일그러지고 세부묘사를 각지게 한 작품이 떠오르실 겁니다. 다들 이런 작품을 보고 나도 그리겠다 왜 이렇게 그린거지 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당시까지 미술은 있는걸 그대로 재현하는게 미술이었습니다미술용어로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캔버스)평면에 재현하는게 회화의 역할이었습니다. 기법의 차이, 내용의 차이는 있었지만 원근법이 만들어진 이래 회화는 위와같은 문법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피카소가 조르주 브라크란 친구와 함께 입체파, 입체주의, 큐비즘 이란 장르, 바로 대상을 원근법으로 그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위치에 따라 크기나 형태가 달라지는걸 그대로 표현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상이 찌그러져 보이고 크기도, 위치도 달라보이는 것이죠. 이 이후로 꼭 똑같이 그리지 않아도 된다 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고 이후 색상에 대한 혁명(야수파) 등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잘아는 추상미술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미술
23.08.30
0
0
세계에 자랑할만한 역사적인 발명품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양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이라 평가받는 금속활자기술을 최초로 만든 나라가 한국입니다.미국의 유명 잡지사인 타임에서 발행한 ‘더 라이프 밀레니엄(The Life Millennium)’라는 책에서 지난 천 년 동안 세계를 변화시킨 100건의 사건 중 금속활자인쇄 발명을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았습니다. 또한, 미주와 유럽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세계사 교과서에는 1455년도에 발행된 구텐베르크 성서를 인류 역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조명해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서양의 관점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금속활자 인쇄술을 통해 정보의 대량 인쇄와 보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서양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을 일어나게 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서양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서양 역사에서 위대한 발명이라 손꼽히는 금속활자기술을 인류 역사에 최초로 발명한 나라가 바로 한국역사 속 고려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오랜 역사책인 ‘동국이상국집’에는 고려 시대인 1234년도에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을 금속활자기술로 발행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1455년도에 금속활자기술로 인쇄된 유럽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약 200년 넘게 앞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정고금예문’은 기록상으로만 존재하고 실물로 전해지고 있지는 않습니다.그런데 1972년에 프랑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 고려 시대 금속활자기술로 인쇄된 “직지”가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의 특별연구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씨가 도서관에서 한국 관련 자료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다가 ‘직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직지 책 안엔 이 책이 고려 시대인 1377년에 금속활자로 발행이 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통해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기술로 책을 인쇄한 나라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2001년 9월 유네스코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역대 세계기록유산 가운데 해당 국가에서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도 선정된 유산은 직지가 유일합니다. 1455년 인쇄된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서 1377년도에 인쇄된 고려의 직지를 통해 학자들은 당시 고려의 금속활자기술이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질 수 있었을 거란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역사 속 활자 인쇄술은 중국과 일본에도 전해졌으며 특히 일본의 역사책인 ‘시경 경기’에는 한국에서 가져간 동활자를 당시 일본 왕에게 바쳤고 이 기술을 사용하여 책을 발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8.30
0
0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몽골족은 수백 년간 통일된 국가가 없이 부족별로 다툼을 일삼거나 주변국인 중화제국이나 거란, 여진 등에 복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칭기즈칸의 등장으로 통일된 국가가 성립된 후 팽창을 거듭하여 북중국 및 만주를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두면서 좋든 싫든 두 나라는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몽골에 쫓긴 거란 유민들이 고려를 침공(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하면서 두 나라는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몽골은 거란 격퇴의 공을 구실 삼아 형제 관계를 요구하고 해마다 막대한 공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였고 몽골의 힘을 잘 아는 고려는 이에 응하여 일단은 평화적인 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당시 몽골은 세계를 제패할 만한 힘을 가진 강대국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주종관계를 맺으면 맺었지 부자 관계나 형제 관계를 맺은 적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려와 형제 관계를 맺은 건 대단히 이례적이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8.30
0
0
505
506
507
508
509
510
511
512
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