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로 몸에 맞는 리듬이 다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나이에 따른게 아니라 세대에 따르는 겁니다시대마다 유행하던 음악이 다른거지나이때문에 뭐가 달라지는게 아니에요.뭐, 데스메탈 같은 너무 자극적인 장르는 늙어서 듣기 시작하긴 힘들지만 어릴때 부터 계속 좋아하던 장르라면 아무문제없죠99세 메탈밴드 팬도 있고 19살 트로트 팬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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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경우는 많았는데 우리나라가 일본을 정복하려고 한 적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때 몽골따라서 일본 침략한적이 한번조선초기에 왜구 정리할 겸 대마도 정벌이 3번 있었고나라단위 공격은 이게 전부입니다.다만 개인적인 해적질은 좀더 자주 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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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애국가는 지금의 애국가가 아니라 다른 형태였다고 하는데 애국가의 종류가 바뀐 적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 애국가"는 바뀐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애국가라는게 나라사랑하는 노래란 뜻이니 만큼대한 제국시절이나 일제 강점기에도 여러가지 애국가가 있었어요대한제국애국가는 연대의 한국 애국가랑은 완전 다른노래고 같은시기에 무궁화 노래라는 스코틀랜드 민요를 개사한 작자미상의 노래가 있었는데 여기에 여러사람이 살을 붙여서 정리한 버전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가사가 나오구요이걸 기준으로 임시정부에서 추가 편집해서 애국가의 "가사" 가 만들어 졌고그후 안익태의 가락이 덧붙여진 버전이 1942년 에 정식으로 "국가"로 정해진 이후로 현재의 애국가가 완성됩니다덤으로 2007년 이전까진 사장조로 연주되 다가 그 후로는 바장조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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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이라는 국가의 이름 뜻, 의미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본인들은 그냥 진 이라고 불렀지만옛날 진시황시절의 진나라나사마씨가 이민족피해서 천도한 후랑 구별하기 위해사마씨가 세워서 사마진 이라고도 하고전성기 시절을 서진 또는 북진이라고 부르는 겁니다천도한 후는 동진 또는 남진이라고 하고넷다 방향 동서남북입니다.땅이 남동쪽/북서쪽 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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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언제부터 궁중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떡볶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세기 말의 요리서인 [시의전서]입니다.여기에 간장떡볶이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이게 변형되어서 생긴 고추장 떡볶이가 1970년대 쯤 부터 기록적으로 유행해서떡볶이=고추장떡볶이가 된거에요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웰빙 열풍이 불면서옛날레시피인 간장떡볶이가 재발견 되었고왕족이 먹었단 기록이 있는 것을 이용해 왕실요리 떡볶이줄여서 궁중떡볶이 라는 이름으로 마케팅을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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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여왕은 왜 성골의 마지막 여왕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골과 진골을 가르는 기준이 현재엔 남아있지 않아서정확한 이유는 알수 없지만뭔가 순혈같은 느낌의 구별이었다면 사라지는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중세 유럽의 예를 들어보면진골성골 없이 왕족은 그냥 왕족인 유럽에서 조차순혈 유지 하겠답시고 근친혼을 반복하다가합스부르크 왕가는 말도 힘들어하는 주걱턱이 되고영국왕실에는 혈우병이 유전되기 시작했어요그런데 유럽 전체에 비하면 훨씬 작은 반도 속 한 나라인 신라에서 왕족을 성골이니 진골이니 구분했으니 순혈이 남을 수 있다면 그게 신기한 일이었겠죠현대처럼 인공수정이 있는것도 아니고 정자주 조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자식을 보려면 그냥 열심히 하면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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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폐위된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종본인은 아무 잘못도 문제도 없습니다문제가 있다면 문종이 단종을 늦게 얻은거하고 바보같은 이유로 일찍 죽은거 정도?부모님 장례치르다 자기가 죽다니..참...수양대군은 야망이 그득한 능력자라는 건 세종도 알고 있는 듯한 묘사가 많습니다.하지만 조선건국 이래로 형제 숙청을 안한 왕이 없을 지경이다 보니까수양대군을 숙청할 수가 없었고, 수양본인이 만약 별생각이 없었어도문종이 엄청 딱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니까 반정생각이 안날 수가 없었어요그래서 단종은 묘호도 못받은 노산군이었다가 후대에 너무 불쌍하다고 단종이란 묘호를 받을 수 있었던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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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시대 음서 제도에 대해 불만이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뭐... 음서로 뽑힌 사람이 나보다 실력이 떨어진다면질투같은건 느꼈을 수도 있지만음서 자체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중세시대니까요, 전 인구를 상대로 시험이나 조사를 할 수있는 현대가 아니니까전세계 대부분나라의 관리들은 개인적 추천으로 뽑았습니다과거시험 같은 제도가 일찍 개발된 조선이랑 중국이 특이한거죠과거도 행정력 부족, 변별력 부족 등의 이유로뇌물이나 가문이 반쯤 정식 채점기준이 된 상태 였기 때문에조선 중후기 부터는 음서랑 별 다를게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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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731부대 책임자를 엄벌하지 않았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단 전범으로 잡아 넣긴 했지만세균전 관련 중요데이터를 준다는 말에 넘어가서 책임자 대부분을 몰래 풀어준겁니다731부대는 보통은 인권문제로 불가능하거나 너무 효율 떨어지거나 해서못할 실험도 식민지인간은 사람이 아니란 논리로 마구잡이로 했었고그래서 독특한 자료가 많았기 때문에 미국도 그걸 원한 거에요혹시 몰라서 말하지만미국은 정의의 나라가 아니고, 세계2차대전은 식민지 해방전쟁이 아니에요그 크기가 굉장할뿐, 본질은 나라끼리 서로의 욕심 때문에 싸운 흔한 전쟁.그러니 미국도 당연히 자기 이득을 위해서 움직였습니다.소련을 막기위해 한국을 독립시켜 준거고소련을 막기위해 일본의 A급전범중 많은 작자들을 사면 혹은 무죄처리 했죠A급 전범은 지휘관 급이고, 당연히 영향력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았으니까요마찬가지 이유로 한국의 친일파들도 처벌 거의 안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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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자료가 왜 없는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선, 기술이 실전되는건 매우 흔한 일입니다.기술직의 지위가 올라간건 현대부터에요중세, 아니 근대 초반부 까지만 해도 사농공상은 전세계 공통인식이었습니다장인은 있으면 좋지만 귀하진 않은 소모품 취급이었죠.한국에서도 자격루 복원은 실패했고중국만 해도 명나라시절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큰 배인"보선(寶船)" 이란걸 만들었었지만중국땅이 너무 커서 바다까지 진출할 필요를 못느꼈기 때에 설계도가 원정끝나고 한세대만에 실전되기도 했습니다.더군다나 당시의 인쇄기술은 해봤자 활자정도니까요안그래도 종이가 귀한데 그림을 그린다면 낭비기도 하고 복제가 거의 불가능 해져서 기록이 남게될 확률도 줄어드는 겁니다.그래서 대부분의 기술은 글로만 기록되었고, 그래서 세세한 디테일은 후대의 상상에 맞겨졌죠다음으로, 현대인에게는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님의 상징이만사실 거북선이란 이름은 태종시절부터 나옵니다.고려의 과선, 여말선초의 검선처럼 창칼을 배에 박아서 침입자를 막는 설계가 전부터 있었고 이것이 태종때 연구되어 거북선이 되었는데 하지만 그냥 실험삼아서 만든 프로토타입에 불과 했는지 아니면 명나라따라서조선도 바다엔 신경 끄고 살아서 그런건지태종 실록에 한두번 언급된 뒤로는 등장이 없었다가이순신 장군때 다시 등장했죠.자세한 기록은 없기 때문에 태종때와 같은 물건인지 그냥 동명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임진왜란 중에도, 그 후에도 계속 개조되었기 때문에거북이 모양인거 빼면 공통점이 없는 여러 버전이 존재했고그 중에서 이순신장군님이 쓴 배가 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거에요이순신 장군님도 장인이 아니라 장군이니까 따로 설계도 남길 생각 안했고조선왕조실록은 "왕조"기록이니까 당연히 무기설계도 같은거 안그렸으니까요심지어 거북선은 사실 철갑선이 아니란게 현재 학계의 정설입니다거북선철갑주장은 일본측 기록에만 나오는데일본의 기록은 "내가 진건 당연한 일이었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과장도 많고철갑이란게 등껍질전체가 철인지, 가시정도만 철인지,그냥 너무 당당해서 철같다고 한건지 알 방도가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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