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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은 어디에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맘모스 동굴(Mammoth Cave)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로, 미국 켄터키 주의 맘모스 동굴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동굴은 그 이름처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지금까지 발견된 길이만 해도 400마일(약 640킬로미터) 이상으로, 지속적인 탐사를 통해 더 길어질 가능성이있습니다. 이러한 규모로 인해 맘모스 동굴은 세계에서 가장 긴 알려진 동굴 시스템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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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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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형성 과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동굴 형성 과정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됩니다.1. 암석의 용해: 동굴 형성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암석의 용해입니다. 주로 석회암과 같은 용해성암석이 물에 의해 침식되면서 동굴이 형성됩니다. 이 과정은 지하수가 암석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탄산칼슘을 용해시키면서 진행됩니다.2.동굴의 확장: 초기 동굴이 형성된 후,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면서 동굴의 크기가 점점 커집니다. 이때 물리적, 화학적 침식이 함께 일어나면서 동굴 내부에 다양한 구조물이 생기게 됩니다3. 형태 변화: 동굴의 내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지형적 특징이 생기게 됩니다. 석순, 석주, 그리고 석회암 기둥 등이 형성되며, 이들은물이 다시 굳어져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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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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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14대)는 티베트의 독립과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철학과 전략을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달라이 라마의 비폭력주의는 아픈 기억의 산물입니다. 티베트인들의 지도자가 된 지 9년만인 1959년 발생한 독립 봉기에서 그는 수만명이 목숨을 잃는 모습을 뒤로 하고 그때부터 '망명정부'를 자처하며 세계를 떠돌아야 했기 때문에 비폭력 평화를 주장하게 됩니다.중국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되 대화를 통해 최대한의 자치를 추구한다는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중도 노선은 5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자신에게 1989년 노벨평화상을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올해 72세인 달라이 라마는 일단 "폭력은 자살행위"라며 여전히 비폭력 노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티베트인들의 폭력시위에 대한 비난도 거부함으로써 자신이 일종의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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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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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철폐하는 과정에서 어떤 평화적 방법을 사용했으며, 그 영향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48년, 백인 소수 정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책을 공식화했습니다이 정책은 흑인, 혼혈, 아시아계 주민들을 법적으로 차별하며 백인들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체제였습니다.흑인들은 투표권, 재산권 등 기본적인 인권을박탈당했고, 백인 소수의 통치 아래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경험해야 했습니다.이에 맞서 만델라는 1944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African National Congress)의 청년 조직을 창설하며 평화적인 저항 운동을 시작했습니다.초기에는 비폭력 운동을 중심으로 시위와 보이콧을 이끌며, 남아프리카 국민들에게 정치적자각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하지만 1960년 샤프빌 학살(SharpevilleMassacre) 사건이 일어난 후, 만델라는 더 이상 비폭력 투쟁만으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그는 1961년, 무장 저항 조직인 우몽콘토 웨시즈웨(Umkhonto we Sizwe)를 창설하고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맞선 무장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감옥에 27년간 투옥되었습니다.1990년 2월 11일, 만델라는 마침내 석방되었고, 그의 석방은 남아프리카 민주화 운동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붕괴를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만델라는 석방 후에도 평화와 화해의 정신을 유지하며, 백인 소수 정권과 평화로운 협상을 통해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이끌었습니다.결국 1993년, 만델라는 그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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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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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많은기계를 만들거나 설계하고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정약용은 수원화성 건설을 위해 거중기를 개발하였는데, 거중기는 밧줄과 도르래를 이용해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 올리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수원화성을 축조하는데 모든 것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는 거중기 제작 및 사용방법과 그림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거중기는 최고 높이가 약 3.6m 였다고 합니다.그렇게 거중기가 탄생하게 되었고 거중기는 복합도르래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를 합쳐 힘을 절반만 사용하게 하는) 도르래를 4개를 사용해 8배의 힘을 낼 수 있게 정약용이 발명하였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어올릴 때는 평행을 유지하기 위해 좌우에서 얼레를 돌리는 힘을 고르게 하여 똑같은 속도로 감아 올리고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릴 수 있었으며,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한 대의 거중기에 30명의 성인 (좌우 각각 15명)이 7.2t이나 되는 돌을 들어올릴 수 있다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이는 1인당 240kg을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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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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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의 기원, 알파벳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알파벳의 기원은 기원전 2000년경 고대 근동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초기의 문자는 주로 상형문자였으며, 이를 간단하게 표기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 페니키아인들이었습니다.페니키아 알파벳은 그리스와 로마로 넘어가면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알파벳의 시초가 됩니다.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 알파벳을 받아들이면서 모음 글자를 추가했습니다. 이 후 로마 제국의 확장과 함께 라틴 알파벳으로 변모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흥미로운 점은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나 문법적 필요에 따라 일부 글자들이 삭제되거나 새로운 글자가 추가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오늘날 영어의 알파벳은 26자로 고정되어 있지만, 초기에는 더 많은 글자가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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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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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에우리꺼를많이가져가고 특히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조총(鳥銃)이란 무기 이름은 새를 쏘아 맞힐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좋은 무기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1460~1480년대 사이 유럽에서 처음 개발된 무기로 1543년 포르투갈을 통해 일본에 전해지면서 동아시아 세계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그 직후인 1550년대를 전후해 중국 명나라에도 전해졌습니다.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한 해 전인 1591년 대마도주가 조선 국왕 선조에게 선물로 보내면서 처음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치명적인 무기로서 조총의 위력을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해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조선군이 연패하게 되자, ‘무서운 무기’로서의 조총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됩니다.임진왜란 중 노획한 일본 조총을 모방해 국내 제조에 성공하면서, 대량 보급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2007년 발견된 조선 시대 충청도 속오군의 병적기록부를 보면 1600년대 후반 충청도 병사 중 76.5%가 조총이 주특기일 정도로 조총 무장 비율이 높았습니다. 1896년을 전후한 대한제국 무기재고표를 보면 조선의 구식군대가 보유하고 있던 조총의 수량이 서울과 함경도 병력을 제외하고도 10만 4,028자루로 되어 있어 그 어떤 무기보다 수량이 많았습니다. 즉 조총은 조선 후기의 대표무기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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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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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은 우리나라를 그렇게 침략을 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일본은 전국의 70% 이상이 산악지악여서 농사 지을 환경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툭하면 한반도를 침략 하곤 했습니다. 임진 왜란 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중국 정벌이라는 꿈 때문에 중국을 정벌하는 통로로 조선을 삼은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대적으로침략 했던 것이죠.이후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도로 국력이 성장했는데, 서양 열강이 전 세계를 차지 하기 전에 일단 조선부터라도 먹어 두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하여 조선을 침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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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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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것 말고는 없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자기 나라의 역사책을 엮어 냈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습니다.고려 시대의 김부식은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를 지었으며, 일연은 삼국유사를 편찬했습니다. 이 두 역사책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며, 특히 삼국유사에는 단군 신화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조선 초기에는 동국통감, 고려사 등을 지어, 국사를 정리하였으며, 실록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후기에는 우리 나라를 더욱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안정복이 동사강목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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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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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는 실존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조로의 모태가 된 실존 인물은 바로 '프란시스 롤로노아' 입니다.17세기 카리브에서 해적을 했었고 매우 잔인하고 냉혹한 성격을 지녔다고 합니다. 포로는 잡지 않고 모두 죽였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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