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이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무엇이라 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동탁이 몰락한 가장 큰 이유는 반동탁연합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여 수도인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반동탁연합이 형성되기 전, 동탁의 권세는 강력했습니다. 반동탁연합이 결성되었을때도 마찬가지로 강력했었구요. 다만 워낙 폭정을 일삼고 있었기 때문에 민심은 잃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말의 특성상, 지방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군소 군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원소, 조조, 손견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군소 군벌의 힘은 한명씩은 당연히 동탁보다 약하겠지만, 연합으로 힘을 합쳐서는 대적할만 하였고 실제로도 승리하였습니다. 이때의 패배로 인하여 동탁은 이전에 잃어버렸던 민심 + 중국의 상징적인 수도인 낙양을 불태우고 천도하여 상징성마저 상실 하였기 때문에 황제만 붙잡고 있는 폭군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이후 여포한테 죽임을 당했을때도 당시에 워낙 안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여포가 배신하고 죽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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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 선조에 대해 궁금한점 질문드려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선조가 방계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에 권력 기반이 탄탄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외척같은 기반 세력이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외척 세력은 왕을 지지하는 세력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왕권을 위협할수도 있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특정 가문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다 보니,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조는 이러한 외척이 아닌 사림에 의하여 "추대"된 왕이었기에 사화를 이겨내고 복권한 사림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사림의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추대한 왕이기 때문에 왕권을 위협할 이유도 없었고, 선조도 사림과 같이 협력하면서 정치를 펼치면 위협 받지 않아 권력 기반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즉위한 선조가 휘둘리지 않게 당시 대비였던 인수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고, 이 기간에 궁 내부의 제왕 수업을 받으면서 사림의 지지까지 받음으로써 권력 기반을 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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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는 왜 대중적인 문화가 되지 못한걸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세계적인 발전이 서구 중심의 발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동아시아의 경우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서구 열강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당시 기술력이나 발전도 자체가 서양과 동양은 차이가 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양식 발전을 통해서 모든 것들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세계화에 발맞춰 빠른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 서양식으로 맞춰서 발전한다 -> 서양식 문화가 대중문화가 되었다.위와 같은 방식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 문화는 대중 문화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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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옷들을 만들던 사람들은 벼슬이 있던 사람들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의 왕실의 옷은 상의원이라는 곳에서 만들었습니다.상의원은 왕실의 의복이나 물품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상위원에 일하는 사람들은 국가 공인 장인으로 "공장"이라 불렸습니다. 상위원에 일하는 사람들은 품계가 있었고, 높게는 정3품에서 낮게는 잡직으로 종7품까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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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교적 자세는 어떤 방향이 옳은 걸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말씀해주신 것 처럼 한국의 외교적 위치는 상당히 애매하긴 합니다. 미국의 우방이면서 바로 옆의 중국의 눈치도 봐야 하니까요.어느 방향이 무조건 옮다고 하긴 어렵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지하면서 중국과 적이 되지 않는, 지금과 같은 노선이 가장 피해가 적은 노선이긴 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무기라 할 수 있는걸 키워야 하는데, 현재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에 많은 부분을 빼앗기기도 했구요. 그래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문화산업에 더 투자하고도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통하는 무기 중 하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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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국가 지도자는 누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한 국가의 지도자가 모든 나라에서 칭송받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국에선 영웅일진 몰라도 주변국의 입장에선 침략자이거나 배신자일수도 있으니까요.전 세계적으로 좋은 평을 받는 사람 중 하나는 3차 십자군 전쟁을 막아낸 살라딘(살라흐 앗딘 유수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랍문화권에서는 물론이고 당시 기독교 국가들도 진정해 기사도라고 칭송했다고도 하니까요.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안보셨으면 한번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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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나라 장수 황충의 죽음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황충은 오호대장군 중 하나로, 전투의 부상으로 인하여 사망하게 됩니다. 오나라와의 전쟁인 이릉대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관우와 장비의 사후 아들들인 관흥과 장포가 장성하여 공을 세우자, 유비가 이들을 칭찬하게 됩니다. 이때 "내 장수들은 이미 죽거나 늙어 쓸모없어 졌는데, 두 조카가 공을 세우는 구나"라는 구절이 황충의 자존심을 건들게 됩니다.이에 황충은 공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출진하게 되고, 실제로 공도 세우긴 하나 복병에 의해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게 됩니다. 이후 돌아오긴 하였으나 병세가 심해져 죽게됩니다. 유비가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였고, 황충은 자신은 좋은 주인을 만나 천수를 누려 미련이 없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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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추억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잇는것도 성향인가요?
안녕하세요. 역사에 질문할 내용은 아닌 것 같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기억 자체가 마음 깊게 박혔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의 추억이라는게 당시의 감정이 그만큼 깊게 저장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이 나지 않을까요?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를 만들어 낸 역사적인 사건들이 있듯이, 나라는 사람에게 뇌리에 박힌 기억이나 추억은 지금의 나를 만든 하나의 큰 사건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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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마 엘리시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에누마 엘리시는 고대 바빌론의 신화로, 기원전 12세기 경에 정리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은 최초의 혼돈 티아마트와 신들의 싸움으로 젊은 신인 마두루크가 물리침으로써 혼돈을 정리하고 질서를 성립한다는 내용입니다.말씀하신 길가메시 서사시도 비슷한 서사 (혼돈의 길가메시가 신들과 만나면서 질서를 정립)한다는 내용에서 유사성은 있으나 같은 바빌론의 신화로 의미를 공유한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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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기사들의 갑옷 무게는 얼마나 됐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중세시대 갑옷은 종류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쇠사슬 갑옷(체인메일)의 경우는 10~15kg, 판금갑옷(풀플레이트메일)은 20~30kg정도의 무게를 하였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판금갑옷은 무게로만 따지면 무겁긴 하였지만 정교한 세공이 들어있어 무게가 활동하기 편하게 분산되어 있었고, 또 활동하기 편하게 관절 부위를 파츠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한다거나, 말에서 내려오면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건 사실이 아닙니다.다만 그래도 무게는 꽤 무거운 편이라 물에 빠지면 빠져 죽는 경우는 많아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프리드리히 1세 대왕이 물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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