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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간원은 어떤 방향으로 왕권을 견제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간원은 사헌부와 함께 대간으로서 국왕에게 간언을 할 수 있는 간쟁, 명령이나 입법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봉박, 그리고 5품 이하 관리 임명에 대한 서경권을 통해 국왕 및 대신에 대한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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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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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은 언제 누가 만든 학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리학(性理學) 12세기에 남송의 주희(朱熹)가 집대성하였습니다.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유학의 분야입니다. 성리학의 어원은 정이가 주창한 성즉리(性卽理)를 축약한 명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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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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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IMF 를 극복하게 된 계기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외환 위기란 좁은 의미로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구제 금융을 받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으로 부터 이행을 약속한 긴축재정, 금융 및 은행 부분의 건전성 제고, 자유 변동 환율 제도 채택, 강력한 산업 구조 및 기업 지배 구조의 개혁 (정리 해고제, 파견 근로제 도입), 노사정 위원회 구성 및 금모으기 운동으로 2001년 국제 통화 기금으로 받은 지원금을 조기 상환하여 외환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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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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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선 왜 왼쪽을 더 중요하게 여겼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방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땅을 바라볼 때 방위(시계반대 방향)에서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볼 때 즉, 성인남년(聖人南面)에서 좌측을 동쪽, 우측을 서쪽을 말합니다. 따라서 동쪽인 좌가 우선이 되죠.예를 들어 우리나라 왕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서 조회를 하였답니다. 왕이 성인남면(聖人南面)하면 문반(군인)과 무반(정치인)이 품계순으로 정렬하였습니다. 즉, 왕이 관료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왕이 기준이 되어 도열합니다.왕이 관료를 바라볼 때 - 좌측 : 동쪽 : 문반(文班) = 동반(東班)왕이 관료를 바라볼 때 - 우측 : 서쪽 : 무반(武班) = 서반(西班)따라서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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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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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건국 신화에 나오는 탁리국은 어디에 있었던 나라 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탁리국은 부여의 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나라로 고리국, 색리국, 탁근국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서기 60년 후한의 왕충이 기술한 <논형>에 의하면 부여의 전신에 해당하는 국가로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은 탁리국 출신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옛날 북방에 탁리국에서 왕이 시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왕이 죽이려고 돼지 우리에 버렸으나 돼지가 입김으로 아이의 몸을 녹여주고 죽이지 않았다.'(논형)그 위치는 헤이룽장성 하얼빈의 근처로 비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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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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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순장제도는 무엇이고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부여의 순장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 <후한서> 동이열전 부여국조에 기록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부여에서는 귀인이 죽으면, "사람을 죽여 순장을 하는데 많을 때는 백명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순장의 대상자는 사망자의노비가 대부분이었고, 사병이나 신하가 순장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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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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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이 전쟁중에 사망하였는데 고구려의 소수림왕은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수림왕(미상~384)은 고구려의 17대 왕으로 고구려의 국난을 극복한 국왕으로 훗날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전성기의 기반을 마련하였니다. 그는 첫째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체제의 기본 법률을 만들고 왕권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마련합니다. 둘째, 불교를 수용하여 국가의 사상적 통일을 달성합니다. 세째 372년 태학을 설치하여 인재 양성과 유학의 보급 등 문화 향상에 영향을 줍니다. 네째 372년 고구려와 앙숙인 전연을 멸망시킨 나라로 전진에 사신을 보내 우호 관계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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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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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1대왕 문종의 업적은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문종(1046-1083)은 1047년 시중 최충에게 명해 종래의 율령, 서산의 분명치 않은 점검하여 형법을 정비하였습니다. 1049년 공음전시법을 제정하였습니다. 1067년 흥왕사를 세웠으며, 자신의 4자(의천)을 출가시켰습니다. 그리고 성종 때 폐지된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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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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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순례자길은 과거 어떻게 탄생한길인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에 관한 배경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자 한 정치적 목적이 강합니다. 산타아고 (Santiago)는 성인을 뜻하는 'San'과 야고보의 존칭 'Diego'의 합성어입니다. 즉 성 야고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데텔라'는 "별빛이 쏟아지는 들판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 이란 뜻입니다.야고보는 예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로 예수님의 부활 이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당시 땅끝으로 여겨졌던 이베리이 반도까지 전도하였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제자 중에 제일 먼저 순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수 백년 이후 818년 양치기(펠라기우스)가 별빛의 인도를 따라 한 동굴 속에서 무덤을 발결하여 주교에게 알렸는데, 주교가 '사도 야고보'라는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갈리시아를 통치하는 알폰소 2세 국왕에게 알리자 흥분한 알폰소 2세가 무덤 위에 성당을 짓게 하고, 완공 이후 직접 말을 달려 야고보의 유해에 가장 먼저 고개 숙이면 '첫 번째 순례자'로 불리게 됩니다.844년 이베리아 반도에 세력을 뻗친 이슬람교 세력에 가톨릭이 맞서 싸운 클라비아 전투가 있었는데, 이때 야고보가 스페인 군 앞에 나타나는 기족을 일으켜 이슬람군을 무찔렀다는 말이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럽에 퍼지게 되었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순례객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성 야고브를 소페인의 수호 성인으로 모시게 되면서 오늘날 순례길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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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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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크리스마스는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됐다는 합니다. 초기에는 날짜가 일정하지 않아 로마 교회에서 1월 6일(신현절), 또는 3월 21일(춘분), 12월 25일(동지) 가운데 하루를 택해 성탄절로 지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353∼354년경 교황 리베리어스가 1월6일을 신현절 혹은 세례절로, 12월25일을 성탄절이라 공식 발표하면서 로마에서 이를 지키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379년 동방 교회에서 12월 25일 성탄절로 여기면서 굳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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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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