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사학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요?
민족주의 사학은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에 대항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자주성을 강조하여 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연구되었습니다. 즉, 한민족의 추체적 역사상을 수립하고, 일제의 식민사학을 극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대표적 역사학자로는 박은식, 신채호 등이 주도했습니다. 박은식은 민족 정신인 국혼을 강조하였으며,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편찬하여 보급했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낭가사상을 우리 민족의 고유 사상으로 강조했으며,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을 편찬하였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 정인보, 안재홍 등은 조선학 운동을 통해 민족 문화 연구를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민족주의 사학은 민족사학의 하위 범쥐로 일제 강점기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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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는 왕위찬탈에 대한 야망이 없었나요?
김종서는 왕위 찬탈의 야망은 없었습니다. 김종서는 세종과 문종의 유서를 충실히 따를 의지가 있었던 신하로 왕위 찬탈을 고려할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문종이 병약할 때 좌의정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단종의 고명 대신으로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했던것 뿐입니다. 오히려 수양대군이 자신의 찬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김종서를 역적으로 몰았으나 그는 일관되게 단종에 대한 충절의 신념을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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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용지는 누가 규격을 정한건가요??
A4 등 용지 규격을 제안한 사람은 1909년 독일의 물리화학학자 프레드릭 오스트발트입니다. 그리고 1922년 독일 공업 규격에 의해 제정되었으며, 1975년 ISO 216으로 전세계 표준 규격이 되었습니다. 프레드릭 오스트발트는 1:√2 비율 이유: 종이를 반으로 잘라도 비율이 동일하게 유지되도록 수학적으로 계산된 최적 비율로 하여 규격을 나누었습다. 이는 종이 낭비를 최소화하고, 계산이 편하고 확대와 축소에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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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은 여름을 어떻게 났나여? 답글 바랍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오늘날같이 당연히 더위를 식히는 에어컨, 선풍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오늘날 처럼 여름이 덥지는 않았습니다. 여름 일평균 기온이 20~24도, 그리고, 가장 높은 기온도 25~30도 정도였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여름을 나는 방법은 건물 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넓은 대청마루, 높은 지붕, 황토 바닥과 정자 같은 피서 구조를 갖춰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자연 그늘과 적극적인 냉기를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탁족을 하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름에 통풍이 잘 되는 삼베, 모시 옷을 입거나 부채질을 하는 것입니다. 일부 부자는 석빙고 얼음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외에도 더위를 이기기 위해 삼계탕, 보신탕을 먹어 체력을 보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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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며느리인 소헌왕후 집안을 왜 역적으로 만든건가요?
태종이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 심씨의 부친 심온을 역적을 몰아 처형했습니다. 심온은 당시 영의정으로 당대로는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하지만 태종은 과거 자신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 친정인 민제 가문이 권력을 쥐고 정치에 개입하여 권력을 남용한 것에 대한 좋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종이 총녕대군을 세자로 착봉한 이후 그의 장인 심온이 세력을 확장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태종은 세종이 즉위한 이후에도 상왕으로 물러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만약 심온이 영의정으로 권력을 쥐면 안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즉 심온을 사전에 제거하여 세종이 외척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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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사람은 누구인가요?
우리나라의 국왕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에 국왕으로 즉위한 국왕은 신라 32대 효소왕으로 6세에 692년에 즉위했습니다. 만 나이로 보면 5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헌종은 7세로 24대 국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8세로 표기되기도 했지만 학계에서는 7세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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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차이점은 무엇인것인가요?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역사에서 언급되는 것으로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기자 조선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 기자 조선은 사아라 왕족 기자가 기원전 1122년 상나라 멸망 직후 주나라의 지배를 피해 조선으로 왔다는 '기자동래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대입니다. 중국 한나라 이후 <사기>, <한서> 등에 1000년 넘게 전설로써만 내려옵니다. 그리고 위만 조선은 진한교체기에 한나라의 지배를 벗어나 연나라 위만이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기원전 194년 준왕을 몰아내고 세운 왕조를 말합니다. <사기>, <한서>에 구체적 기록이 존재하며, 남방의 진과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였으나 기원전 108년 한의 침입으로 멸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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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태정태세문단세 노래같은게 있었을까요?
당연히 조선시대 국왕을 노래로 부르는 것은 불경한 행동으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 자체가 모살죄, 대불경으로 처벌받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시험의 왕조 계보를 암기하는 것은 필수인데, <동국통감> 등과 같은 사서를 통해 통째로 외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오늘날 처럼 태정태세문단세 같은 노래는 현대 역사 공부의 암기 수단을 위해 만들어진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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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는 처음 어디서 만들어 졌나요?? 군대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맞나요??
아메리카노를 처음 만들어 마신 나라는 1943년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입니다. 이탈리아 로마를 점령한 미군이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가 너무 쓰고 진해서 물을 타서 희석하여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인이 마시는 커피(미국인 처럼)로 비하하는 의미로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는데, 이 것이 현재의 아메리카노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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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떤 문명으로 먼저 발전했나여?
중국 문명은 항하 문명이며 세계4대 문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원전 2500년경 황하강의 양사오 문화를 바탕으로 청동기와 관계 농업을 발달시켰습니다. 전설시대의 하나라에 해당하나 실체가 확실한 황하문명의 주인공은 기원전 1600년경에 성립된 상나라입니다. 상나라는 갑골문자를 활용했으며, 점을 쳐서 정치를 한 신정정치를 시행했습니다. 또한 달력을 사용하였으며, 순장의 흔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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