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일반 백성들은 명절이 되면 무엇을 했었나요?
조선의 일반 백성도 설, 추석, 단오, 대보름 같은 명절을 지냈으며, 오늘날 휴일처럼의 연휴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즐겼습니다. 설에는 새옷을 입고,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였습니다. 또한 떡국을 먹고 윳놀이, 널뛰기 등의 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정웗대보름에는 오곡밥, 부럼을 먹고, 마을 단위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지신밟기 등의 공동체 행사를 했습니다. 단오는 그네뛰기, 씨름,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속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추석에는 햇곡식과 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빚어 먹으며 성묘했습니다. 수확이 끝난 뒤라 농민에게는 비교적 여유 있게 친족·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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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판옥선은 누가 만든 배인가요?
판옥선은 특정한 한 사람이 발명한 배라기보다 조선 정부와 수군이 왜구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의 기존 선박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군함입니다. 명종 때 1555년경 정식으로 시험 정비되었으며, 송흠 등이 개발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 배를 그대로 들여온 것이 아니라 조선의 평저선, 다층 갑판 구조를 발전시켜 병사와 노꾼을 분리하고, 화포전을 하기 좋게 만든 조선식 전투함입니다. 그리고 거북선은 판옥선과 별개로 갑자기 만들어진 배가 아니라 판옥선의 선체, 전투 체계를 토대로 상부를 덮고 돌격용 장비를 강화한 특수 전투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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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서유대 무신은 파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서유대는 두차례 파직된 뒤 다시 기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라병사로 부임하던 길에 전라감사 김상익의 아랫사람들이 저지른 불법을 다스리다가 김상익의 무고로 파직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는 지방 관료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별히 반역같은 중죄가 아니라 곧 승지로 기용되었습니다. 두번째 파직은 금위영이 나례도감과 연습하던 중 화포를 잘 못 발사해 불이나 사건입니다. 서유대는 금위대장으로 부대의 책임자로 추고와 파직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화포 사고의 관리책임이어서 정치 생명이 끝날 중죄는 아니었고, 정조가 그의 군사 능력과 충성도를 신뢰했기 때문에 파직 이후 책임을 확인하고 재기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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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룡은 공손찬 수하에 있을 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가요?
조자룡이 공산찬 휘하에 있을 때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장수였습니다. 정사 기록도 '유비를 따라 기병을 이끌었다'는 정도만 남아 있어, 공손찬 진영의 핵심 장수였다는 뚜렷한 전공은 확인되지 못합니다.조자룡은 공손찬이 망한뒤 갑작스럽게 유비에게 간 인물이라기보다 공손찬의 부대에 속해 있던 시절부터 유비와 함께 전해 돕는 작전을 하며 이미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공손찬이 무너진 뒤 유비에게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자룡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208년 장판 탈출전으로 조조군의 추격 속에서 유비의 아들 유선과 부인을 구출했고, 이 공으로 억문장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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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토기들 어느시대 무엇일까여??
첫번째 토기는 일반적으로 굽다리 접시, 또는 고배로 불립니다. 이 것은 한반도 남부, 특히 신라, 가야 지역에서 삼국시대에 널리 발달했습니다. 구미 지역은 낙동강 유역의 신라권과 가까우므로 진품이라면 신라계 토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번째 토기는 둥글고 큰 몸체에 짧은 목과 넓은 아가리가 있는 항아리로 단경호에 해당합니다. 삼국시대의 회청색 경질 토기, 조선시대 또는 근현대 저장용 항아리 등으로 파악됩니다. 현재 사진은 그 핵심 부분이 충분히 보이지 않아 삼국시대 유물로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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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 중 이완용이 압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뭔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을사오적 가운데 이완용이 압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을사조약부터 한일병합까지 일제의 침략에 가장 적극적이고, 핵심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완용은 1905년 을사조약의 을사오적, 1907년 정미조약의 정미칠적, 그리고 1910년에는 총리대신으로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주도했습니다. 다른 을사오적 인물 가운데 이완용은 국권 상실의 전 과정에 걸쳐 핵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1907년 헤이그 특사 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의 퇴위 과정에서도 이완용이 내각총리대신으로 어전회의를 주재하며 고종을 협박하여 양위를 이끈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의 실질적 책임자입니다. 즉, 이완용은 을사조약·정미조약·한일병합에 모두 관여한 유일한 ‘3관왕’ 친일파였고, 고종 강제 퇴위를 주도하며 한일병합조약 체결의 실질적 책임자가 되었기 때문에, 을사오적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고 압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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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추석과 같은 우리나라 명절의 유래에 대해 알려주세요
설은 새해를 여는 날로 고대 부여, 삼국 시대부터 천지신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한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던 풍습이었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삼국시대에는 이미 정월 초하루를 중히 여겨 제사와 연회를 벌였으며, 고려 때는 9대 명절 중 하나로, 조선 때는 4대 명절(설·한식·단오·추석)로 공식화되었습니다.그리고 추석은 신라 유리왕 9년(기원전 32년) 도성내 부녀자들을 두편으로 나누어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길쌈 대회를 열고 판정한 다음, 진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하며 노래와 춤을 즐기는 것을 가배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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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왜 새의 비행을 보고 점을 치는 아우스피키움을 국가적으로 중시했나요?
로마인은 국가의 번영이 신들의 호의에 달려 있다고 믿었습니다. 전쟁, 선거, 입법, 식민지 건설 등 중대사는 모두 신의 승인이 필요다고 여겼고, 새의 비행, 울음 소리 등을 통해 신의 의사를 읽는 아우스피키움이 그 공식 수단으로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아우스피키움은 단순 미신이 아니라 공직자, 사제단이 독점하는 공식 절차였습니다. 불길한 조짐이 나오면 선거, 법안, 군사 작전을 연기하거나 무효화할 수 있어 사실상 국가 의사 결정의 브레이크이자 정당화 장치로 작동했습니다. 따라서 아우스피키움은 미신이나 개인적 점술이 아니라 국가의 공식 의례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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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문화중에서 콩으로 된 음식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여?
콩은 기원전 2000년경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여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거쳐 18세기 유럽, 미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1, 2차 대전 당시 식량난 속에서 단백질 유지 자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콩은 단백질이 약 40%로 단백질 함량이 매우 높습니다.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했던 전근대 사회에서 콩은 서민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콩은 척박한 토양에도 재배가 용이하고, 가뭄, 홍수에도 잘 자랍니다. 또한 건조 상태로 장기 보관에도 유리하며, 두부, 된장, 간장, 두유, 콩나물 등 다양한 식품으로 가공할 수 있습니다. 즉, 결국 콩은 영양·재배·보관·가공 모든 면에서 인간 식생활에 적합해 전 세계 여러 문명에서 식문화의 중심 식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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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라는것은 무엇이고 어떤의미를 갖고잇느걸까여?
차례는 본래 '차를 올리는 예'를 뜻하는 것으로 명절이나 초하루, 보름 등 절기에 조상에게 간단한 제사를 지내는 세시 풍속입니다.원래는 사당에서 정월 초하루, 동지, 매월 초하루와 보름 등에 참배하며 술과 차를 올리는 의식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차보다 술과 음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본래 명칭인 차례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조선시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면서 조상 제사를 윤리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명절에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고, 가문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효의 실천으로 된 것입니다. 게다가 농사일과 계절의 전환점이라 가족이 모여 조상 은혜를 기리고 가문 결속을 다지는 자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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