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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트어가 로마시대에 쇠퇴해 사용중단됬나요?
로마 시대에 갈리아와 같은 지역에서 사용된 갈리어 등 대륙 켈트어군은 로마 제국이 확장되면서 점차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라틴어가 확산되어 켈트 언어의 쇠퇴가 가속화되었습니다. 브리튼섬, 아일랜드 등에서 사용된 도서 켈트어군으로 웨일스어, 브르타뉴어, 아일랜드어, 스콜트랜드 게일어는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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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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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때 노예로부려먹을때 이마에 불도장찍었나요?
노예에게 불도장을 찍는 사례는 일부 지역에서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도망친 노예를 다시 붙잡았을 때 이마에 "FUG(도망자)"를 불도장으로 새기거나 낙인을 찍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노예도 소유주나 거래 상인의 표시로 불도장을 찍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 중국도 범죄자나 도만 노예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묵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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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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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도 조선처럼 사관이 황제를 쫗아가면서 기록을 하였나요?
중국에서도 사관제도가 존재했습니다. 중국에서 사관제도는 좌사와 우사로 나뉘어 황제의 행동과 발언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역사서 편찬은 중국 사관 전통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사관은 왕을 따라다니며 언행을 기록하고, 독립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의 사관은 황제 중심으로 기록되었으며 황제의 권력 통제 아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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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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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나 조선때는 왕이 죽으면 그 왕에 대한 실록을 만들었는데 이런 실록을 나중에 보았나요?
실록은 왕이 죽은 후애 편찬돠었으며, 후대 왕이나 일반 신하들이 직접 열람할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되었습니다. 실록이 작성되는 중에도 검열하거나 수정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비밀을 보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이후에는 사고에 보관하고 후대 왕들의 열람을 금지시켰습니다. 이는 시록의 진실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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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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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로의 시무 28조는 어떤 내용인가요?
시무 28조는 고려 성종의명에 따라 최승로가 올린 개혁안입니다. 주요 내용은 유교 숭상과 연등회, 팔관회 등 불교 행사의 억제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외관을 파견하여 중앙 집권의 강화를 주장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12목에 지방관이 파견되었습니다. 또한 중국 문물을 맹목적으로 도입하지 말고 고려의 독자성을 유지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시무 8조는 고려 초기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유교적 통치 이념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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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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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영조 때 어떤 반란이 있었나요?
조선시대 영조 당시 일어난 반란 가운데 가장 대펴적인 것이 1728년 이인좌의 난입니다. 이인좌의 난은 경종이 병약한 상태로 4년간 재위하다가 사망하고 연잉군이 즉위하여 영조가 되었는데, 소론 강경파는 영조와 노론의 독살설의 주장하였습니다. 이인좌를 중심으로 소론과 일부 남인 급진 세력을 영조를 폐위하고 밀풍군(소현세자의 증손)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청주성을 점령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반란이 진압되어 소론 강경파와 남인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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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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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한국 장인 납치해서 자기문화인척했나요?
일본이 한국이 문화와 기술을 가져간 대표적인 것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도공을 대거 납치한 사건입니다. 특히 이삼평은 일본 사가현에서 백토를 발견해 아리타 도자기를 발전시켰습니다. 이삼평은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져간 기술과 문화를 바탕으로 독자적 문화로 포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아리타 도자기나 사싸마아갸 등 일본 전통 도자기 뿌리를 조선 도공에서 비롯된 것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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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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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과 소론이 발생배경은 무엇인가요?
노론과 소론의 뿌리는 서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서인은 선조시기 동인과의 대립된 붕당으로 인조반종 이후 남인과 공존 체제를 유지하다 현종 당시 예송논쟁으로 대립하였습니다. 숙종 당시 1680년 경신환국으로 권력을 장악한 서인이 남인의 처벌을 놓고 송시열 주도의 노론은 철저한 제거와 강경한 명분, 윤증 중심의 온건한 처벌과 실용적 접근을 추장하며 타협을 중시하면서 분열하였습니다. 특히 송시열과 윤증간의 개인적 갈등인 윤증의 부친 윤선거의 묘지명 문제를 둘러싼 논쟁(희나시비)에서 송시열과 윤증이 대립이 결정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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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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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이라는 음식의 기원이 궁금합니다
족발은 한국의 대표적 음식으로 황해도 지역의 토속 음식인 "갱엿 돼지족조림"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통적으로 돼지 다리를 삶아 간장과 향신료로 조리하는 요리로 서민들 사이에 즐겨 먹었던 음식입니다. 특히 6.25 전쟁 이후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서울 장충동에서 족발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풍미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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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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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를 받들어 새왕조인 조선세웠나요?
1392년 이성계는 정도전, 조준, 배극렴 등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받아 조선을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한양을 새 도읍지로 하여 궁궐과 종묘, 사대문을 정하고 유교적 이상 국가 실현하려는 철학과 풍수를 바탕으로 건설하였습니다. 한양은 북쪽의 북악산, 남쪽의 한강을 끼고 있어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적 명당으로 한양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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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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