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를 맨 처음 개발한 사람이 누구실까요?
카스테라는 특정 인물이 개발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의 카스티야 지방에서 유래한 과자가 포르투갈에 의해 16세기 일본으로 건너가 카스테라가 된 것입니다. 포르투갈 상인이나 선교사들을 통해 일본의 나가사키로 들어갔는데, 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즉, 카스테라는 스페인 카스티야, 포르투갈의 경우, 그리고 일본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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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고대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그런데 최근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같은 뮷즈 열풍은 전통 문화를 박물관에서 일상 속에 두고 쓰는 취향 소비재로 변환시키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색감과 크기, 쓰임을 바꿔 현대적 소품으로 재구성한 사례로 전통 문화와 유물을 가까이할 수 있는 생활형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게다가 MZ 세대의 궂즈 열풍과 연결하여 단순 기념품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아이템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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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이 우리나라에 끼친 좋은 영향들
맥아더 장군은 6. 25 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에 성사시켜 전세를 뒤집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전쟁 시찰과 현지 지휘로 병사들과 지휘관들에게 심리적 지지를 줬다는 평가가 있습니다.그런데, 본래 맥아더 장군은 6.25 전쟁 이전에 2차 세계 대전 동안 태평양 전역에서 연합군을 지휘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항복 수락과 점령 통치하였습니다. 전후 일본의 최고사령관으로서 항복을 받아 내고 일본 재건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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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선 광흥창역 이름인 광흥창의 유래를 아시나요?
광흥창은 본래 원래 고려 때 제도를 이어받은 창고였습니다. 조선에서는 호조 소속으로 편제되어 관리들에게 줄 곡식과 녹봉을 맡던 곳입니다. 현재 서울 마포구 창전동 서강 일대에 있었습니다.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은 그 주변에 옛 광흥창 터가 있었기 때문에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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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계에서는 미실이 실존했을 ...
사학계의 주류 견해는 미실의 존재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미실 관련 사건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핵심 정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필사본 <화랑세기>에 의존하는데, 이 필사본은 위서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 연구자는 미실이라는 인물의 원형이 이었을 가능성은 열어두지만 실존했을 가능성을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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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은 어떤 일이 배경이 된 사건인가요?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한일 회담 반대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던 혁신계 인사들을 묶어 북한의 지령을 받은 지하 조직이라고 조작하여 구속 탄압한 사건입니다. 당시 사건 연루자들은 반공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일부는 징역형, 일부는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차 인혁당 사건은 흔히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 부르는 사건으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다시 이들을 지목하여 구속, 고문으로 8명에게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1, 2차 인혁당 사건은 정권이 반대 세력을 국가 안보와 사건으로 엮어 처벌한 사건으로 2013년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됐으며, 2015년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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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홍선이라는 분이 유명한 분인가요?
우홍선은 한국전쟁에서 학도의용군으로 참여하고 4.19 혁명 이후에는 민주화, 통일 운동을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그리고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 집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는 그의 아내 강순희 여사의 삶을 담은 구술 자서전으로 유시민 작가가 인터뷰 형식으로 저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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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족의 범위는 어떤 민족들까지 포함이 되나요?
예맥족은 보통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 살던 고대 집단을 가리킵니다. '예'는 동예, 예족 처럼 한반도 동북부와 그 주변에 있던 집단을 말하며, '맥'은 부여, 고구려와 연결하여 설명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여러 세력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맥 계열은 역사적으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같은 고대 국가, 부족 연맹과 자주 연결됩니다. 이들은 한국사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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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통일한 후 백제나 고구려의 고위 관료들이 신라에서 업적을 세운 사람이 있나요?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고구려, 백제 유민이 신라에 편입되면서 활동한 사례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 안승은 본래 한성을 근거로 고구려 부흥운동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신라에 포섭되어 나당 전쟁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는 익산에서 보덕국의 국왕으로 옹립되었으며, 신라를 도와 당군 축출에 기여했습니다.신라는 통일 이후에도 민족 통합 정책을 통해 고구려, 백제 유민을 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각국의 지배층에게도 골품과 관등을 제공하고, 중앙군에 9서당에 유민들도 포함하여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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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단일인종 비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비록 한국이 단일 민족은 아니지만 단일 민족처럼 보이는 것은 오랜 기간 문화적 동질성에 나온 결과입니다. 지리적으로 한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외세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방어해 인구 교체가 일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오랜 정주 농경 사회로 이동과 정복이 미미했습니다. 또한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기를 거치면서 한민족 의식이 강하게 굳어져 정체성이 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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