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크리스마스에는 정말 휴전이 이루어졌나요?
1차 대전 중 1914년 크리스마스에 서부전에서 비공식적으로 휴전을 합의하였습니다. 이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현장 수준에 일시적으로 일어난 평화 순간입니다. 참호 전투로 대립하던 중 독일군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등부르 캐럴로 시작하자 영국, 프랑스군고 노래를 부르며 만나 악수와 선물 교환, 축구 경기, 전사자 매장도 했다고 합니다. 약 40lm구간에서 수만명이 참여했으나 26일 전투가 재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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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씨왕후 보는데 이 부분 역사적 사실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드라마 우씨 왕후는 취수혼을 통해 연우(산상왕)을 선택하여 왕후로 재임을 이어간 인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고국천왕의 왕비였던 우씨왕후는 아들이 없어 왕위를 형제에게 물려줄 상황이었으며, 우씨왕후는 국상을 숨기고 발기에서 가 사실을 알렸으나 발기가 거부하자 연우와 협력하게 됩니다. 형사취수혼은 고구려, 부여의 결혼 풍습으로 이를 이용하여 두번 왕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국천왕의 독살, 1. 3왕자 구분과 요동태수, 4왕자 순차 방문 등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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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에서 백범 김구 선생님 탄생 150주년을 유네스코 기념해로 공식 지정 했네요..
유네스코가 2026년을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해로 지정한 것은 그의 '문화의 힘으로 세계 평화'를 추구한 사상이 유네스코의 가치와 부합한 결과입니다. 다산 정약용(2012), 김대건 신부(2021)에 이어 올해 김구 선생님까지 세번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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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서 윤달과 윤년의 개념 알고싶어요
윤년은 양력에서 하루를 더 넎는 해이고, 윤달은 음력에서 한달을 더 넎는 개념입니다. 양력 1년은 정확히 365일이 아니라 약 365.2422일이어서 매년 0.2422일씩 남습니다. 이 오차를 모아서 4년에 한번씩 2월달에 29일을 추가해 366일로 하는 것을 윤년이라 합니다.반면 윤달은 음력 한달은 달이 한번 차고 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9.5일입니다. 이것을 12달로 하면 354일 정도됩니다. 이는 양력 1년인 265.24일부터 약 11일 짧습니다. 이 차이가 몇년 쌓이면 음력달과 실제 계절이 한달 이상 차이가 나는데 이를 보정하기 위해 한달을 통째로 더 넣은 달을 윤달이라 합니다. 즉 윤년은 양력, 윤달은 음력이라고 먼저 분리하고 윤년은 4의 배수, 100배수, 400의 배수에 윤년을 설정합니다. 반면 윤달은 2~3년에 한번, 달이 하나 더 생긴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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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에 있던 동종이 타종으로 사용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신각 동종은 조선시대 도성 시보(인정, 파루 알림) 종으로 1468년 세조 때 제작하여 성문의 개폐 시간을 알렸습니다. 새벽은 33타, 밤은 28타를 쳤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46년 광복절 타종부터 제야, 3.1절 등에 사용하였습니다. 동종은 문화재 보호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하여 1985년 에밀레종 모형 새종으로 대체 타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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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의 발해고는 1권본과 4권본 두종류가 있다던데 무슨 차이가 있나요?
유득공의 <발해고>는 조선 정조(1784) 때 완성된후 나중에 증보, 수정해 4권본으로 개정했습니다. 1권으로 독립 간행된 초기 버전으로 9고(군주, 신하, 지리, 직관, 의장, 물산, 국어, 국서, 속국 등 구성되었습니다. 4권본은 <영재서종>에 수록된 증보판으로 분량이 증가하고 5고(군주, 신하, 지리, 제관, 예문)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지리고 대폭 보강(발해 5경·15부·62주 인용), 발해 멸망 후 흥요국 인물 추가, 국서고를 예문고로 확대·오류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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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정말로 스님 복장을 입고 다녔나여?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우기 전 세달사라는 절에서 선종 법호로 출가항 승려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889년 명주 장군으로 추대될 때까지 승려 신분을 유지하며 봉기를 주도하고 머리를 깎고 계율에 구애받지 않은 담력 있는 스님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 <해동역사> 등에서 머리에 금관을 쓰고 몸에는 가사를 입었다는 기록과 더불어 미륵불을 ㅈ처하여 화려한 행차를 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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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 현장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현장은 당나라 초기 위대한 승려이자 여행가입니다. 그는 수나라 말기 강릉(산시성) 출신으로 13세에 출가하여 불교 경전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627년 당 태종의 출국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홀로 서역으로 떠나 17년만인 645년 귀국했습니다. 그는 날란다 사원에서 유학하여 법승들과 토론하고 <대당서역기>를 통해 139개국 기록을 남겼습니다. 서유기는 명나라 당시 1592년 현장의 실제 여행을 바탕으로 불교 수행과 풍자 요소를 가미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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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동안 해병대 작전지휘권이 육군에게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해병대 작전 기휘권이 현재 육군에 있는 것은 1950년대 6. 25 전쟁 발발 직후 육군 소속으로 창설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 인천상륙작전 등 육군 지상전 지원 임무를 수행하며 육군 하부 부대로 편성되었습니다. 이는 전쟁 초기 국군 작전 지휘권이 미군에 이양된 상황에서 육군 중심 지휘체제를 유지하며 통합 작전이 용이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육균 특수 부대 성격으로 시작해 별도 독립성이 낮았고, 해군 소속이지만 육군 작전 사령부에 사단 작전 통제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4군 독립 체제 구축이 어려워 육군의 지휘를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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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이후에 일본 패망하고 한국에 그대로 거주한 일본인과 그의 자손들은 얼마나 될까요
해방 후에도 일본인 가운데 일부는 우리나라에 남아 살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한반도에 거주한 일본인은 약 70~90만 정도됩니다. 미군정 추산으로 1945년 9월 일본인 72만명 중 거의 전원이 1000엔 보상으로 송환되었고, 잔류 희망자 조차 강제 귀국 조치가 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인 가운데 배우자가 한국인인 경우에는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잔류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어 그 수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잔류자 후손은 세대 경과와 혼인으로 혈통이 희석되어 별도 집계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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