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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재산 상속은 장자에게만 해줬나요?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 중기의 재산 상속은 모두 아들과 딸 사이에 균등하게 상속이었습다. 자녀 간의 상속분에 차이가 없는 균분상속의 형태를 지속했습니다. 재산의 균분 상속은 제사 의식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즉 당시로는 윤회봉사로 아들딸 구분없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재산도 균분상속이 일반적입니다.그러나 성리학적 질서가 일반화되는 17세기 이후에는 장자가 제사를 지내고,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들여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재산 상속도 아들 중심, 그리고 장자 상속제가 굳어집니다. 따라서 장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아들 장자 주변에 거주하며 장자를 도우며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상속받지 않았기 때문에 혼인도 신부가신랑의 집으로 와 사는 시집살이가 일반적이고 같은 성끼리 집성촌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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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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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석탑 중에서 가장 층수가 많은 석탑은 무엇인가요?
현존하는 남북한 포함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층수가 많은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탑입니다. 고려 후기에 제작된 이탑은 대웅전 앞 뜰에 팔각의 13층으로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만든 탑입니다. 남한에도 경주 정혜사지 13층탑이 있으며, 경천사지 10층석탑과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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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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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스스로 역사서를 만들었었나요?
현존하는 역사서로 <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서를 비롯해 <삼국유사>, <일본서기>를 통해 가야가 자신들의 역사서를 편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상의 역사서를 통해 단편적으로 이해하거나 유물, 유적을 통해 이해하는 형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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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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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학교에서는 통일신라와 발해를 아울러서 남북국 시대라고 배우고 있나요?
과거에서는 신라의 통일 전쟁을 중시하여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과 676년 당군 축출을 강조한 통일신라와 이후 성립한 발해를 구분하여 단원 주제로 삼았습니다. 즉 "통일신라와 발해' 이렇게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발해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유득공의 <발해고>의 '북국'을 인용하여 '남북국 시대'를 인용하여 단원 주제로 사용하여 한국사 교과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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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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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만들어진 총융청에서 발급한 공명소첩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총용청은 인조가 1624년 북한산성을 포함한 수도를 방위하기 위해 설치한 군영입니다. 그리고 공명소첩은 정부 주도로 시행한 관직 임명 증서입니다. 조선 후기 재정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부유한 사람에게 공명첩을 팔았습니다. 즉 이름이 쓰여질 부분이 비어 있는 관직 임명장으로 대부분 명예직에 해당됩니다. 이를 통해 하층민의 신분 상승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였으나 남발로 부담을 가중하기도 하였습니다.공명첩은 판매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첩가를 받고 공명소첩과 함께 발급한 후에 비로소 임명 문서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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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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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은 오래된 철체건물인데 무너지진 않을까요?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188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래되어 정기적인 유지 관리를 통해 안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심각하게 부식되어 전면적 수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답니다.따라서 페인트를 모두 벗겨내고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재도장을 진행중이라 합니다. 현재까지 20번째 재도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조적 안정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는데, 2031년까지 3억 8000만 유로를 투자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오래되어 부식정도가 심할 것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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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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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의 음식이 왜 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인가요?
포르투갈은 일찌기 16세기 바스코다가마의 인도 항로를 개척하여 인도의 고아, 말라카 등 아시아 여러 곳에 그들의 거점을 마련하여 동방 무역을 장악했습니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상인들은 중국과의 무역을 위해 명나라와 협상을 벌여 마카오 대한 거주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1557년 포르투갈은 마카오에 정식으로 거주지를 설립하고 중국 본토와 상업 교류를 시작하여 식민경영 하였습니다. 이후 마카오는 중요한 무역기지로 발전하였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이 홍콩 지배권을 강화하자 포르투갈도 청과 협상하여 지배권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1975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 포르투갈은 해외 식미지 경영 포기를 결정하고, 반환협정을 체결하고 1999년 중국에 반환하였습니다.이상과 같이 마카오는 16세기 이후 포르투갈의 동방 무역 거점으로 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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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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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는 정말로 사형수를 콜로세움에 이용했나요?
고대 로마 시대에서는 콜로세움에서 맹수를 이용하여 사형수를 처형했습니다. 범죄자들을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에게 던져주는 형태의 공개 처형을 토해 로마 제국의 힘을 과시하고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콜로세움은 노예와 범죄자들이 대중의 오락을 위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던 검투 전사의 진원지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자유를 얻을 만큼 사람은 극소수였고 단순히 수천명의 관중의 오락거리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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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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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문화중 우라나라는 삼오제라 하는데요.
'삼오제'의 정확한 표현은 '삼우제'입니다. '삼우제'란 장례가 끝난 이후 사흘째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이는 돌아 가신분의 혼백을 평안하기 위해 위해 지내는 제사로 장례 당일에 지내는 초우, 다음날 지내는 재우, 그리고 세번째날 지낸단고 해서 삼우제입니다. 삼우제는 고인을 모시는 곳에서 실시하며, 묘자리를 확인하고 살핍니다. 고인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여 상차림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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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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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보면 고조선때부터 우리나라는 왕위를 세습한것인가요? 그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걸까요
고조선은 조선시대 편찬한 <동국통감>에 따르면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건국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기원전 109년 한무제의 공격을 받아 기원전 108년 멸망하였습니다.그런데, 고조선의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기원전 3세기 부왕에서 준왕으로 왕위가 세습되었습니다. 또한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국왕 중심의 왕권이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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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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